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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서주굉 - 『죽창수필』,불광출판사
| 2008·11·18 20:37 | HIT : 1,504 | VOTE : 326 |
운서주굉 연관스님 옮김, 『죽창수필』,불광출판사,1만8천원

세상사 얘기하듯, 여운·불심 묻어나는, 큰스님 설법 에세이


독서를 잘하는 사람은 손발이 춤추는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렇게 해야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독서삼매경에 들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경지에 든다는 것은 복잡한 세상사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는 꿈같은 얘기다. 특히 일년에 책 한권도 제대로 읽을까 말까할 정도인데 삼매경의 경지라니….

그러나 불자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불서를 읽지 않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불서 읽기가 참 불자가 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면, 우선 자신의 성향에 맞는 불서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이 때 염두해야 할 점은 책이 독자를 압도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쉽게 읽을 수 있으면서 깊은 여운을 남길 수 있다면 그야말로 최선의 선택이다. <죽창수필>(불광)은 이런 기준에 딱 들어맞는 책이다. 사람 사는 얘기와 재미난 이야기들은 독자들과의 거리를 좁혀주고, 법문까지 들려줌으로써 부처님의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준다. 이런 점이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책에 몰입하게 하는 ‘죽창수필’의 힘이다.

글쓴이는 중국 항주 운서산에 일대총림을 창건하여 선·염불·계율에 대해 투철했던 운서 주굉 스님. 스님이 79세 되던 해 대나무 창(竹窓) 아래에서 붓 가는 대로 쓴 것이 이 책이다. 원로 스님이 쓴 글이여선지 원숙하면서도 날카롭다. 묻고 대답하는 짧은 글이 440여 편이나 실려 있으나 그 요점은 불심을 밝히는 데 있다. 특히 아무 비판 없이 내려온 구습이나 그릇된 풍습을 지적한 점은 눈 여겨 볼만하다.

이처럼 이 책의 글들은 되씹으면 되씹을수록 새롭게 다가온다. 하지만 더 이상 이 책의 가치를 논하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지나친 호평은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은 독자들에게 오히려 선입견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눈밝은 독자들에게는 이 책의 진솔함이 신선한 깨달음으로 다가 갈 것이다.


만약 한 줄의 글도 읽을 수 없을 만큼 바쁜 분이라면, 그냥 사서 책상 위에 올려 두기라도 하라고 감히 권한다. 저절로 읽게 될 책이기 때문이다. 연관스님 옮김. 값 1만 8천원.



김중근 기자(gamja@buddhapi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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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고 싶은 글 2



아래 글은 지리산 골골을 메주콩 밟듯 샅샅이 살피고 다니시는 것으로 ‘지리산과 내가 한 몸’이라는 정신을 체현하시는 일 말고도 실상사 안에 있는 화엄학림의 학장으로 일하고 계시는 연관 스님께서 번역하신 『죽창수필(竹窓隨筆)』(불광출판부, 1991)에서 옮겨 온 글입니다. 연관 스님은 운서주굉 스님의 이 책 외에도 여러 경전을 번역하신 학식 높으신 분으로서, 풀꽃상을 드리겠다니 “한 일이 없다”시며 시상식 날에도 지리산 깊숙이로 도망치신 분이시기도 합니다. 1535년 항주에서 태어난 운서주굉 스님은 덕행과 문장이 뛰어난 큰스님으로서 30여 종의 저서를 남겼다고 합니다. 특히 연관 스님의 번역으로 불자들에게 널리 읽히게 된 『죽창수필』 본서(本序)에는 ‘아! 나 이제 늙어, 어찌 주머니 속에 넣어 둔 채 주둥이를 동여매지 않고 이렇게 주착없이 지꺼리리요만, 아! 나 이제 늙었으니 지는 해 또 얼마나 남았느뇨. 이렇게나마 말하지 않고 또 어느 때를 기다릴 것이며, 만약 중생을 이익되게 하지 않으면 다른 날 언제 저들을 구휼(救恤)할 수 있으랴. 그리하여 이 글을 쓰노라’, 라는 글이 보입니다. 원숙하면서도 날카로운 운서 스님의 필봉을 잠깐이라도 느끼게 되어 여간 반갑지 않습니다.--풀꽃세상

□ 『죽창수필』 운서주굉 지음·연관 옮김



물에 덴 후의 느낌 1

신축년 정월 초하루, 평소대로 목욕을 하다 뜨거운 물 속에 발을 헛디뎌 발꿈치부터 허벅지까지 크게 데였다. 그러고도 약을 잘못 써서 두어 달이나 지나서야 겨우 나았다. 비록 많은 고통을 겪기는 했으나, 그 고통 속에서 평소의 허물을 돌아보며 큰 참괴심을 내어 보리심을 발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던 것이다.


평소에는 사대(四大)1)가 건강하여 걷거나 앉을 적에 아무 불편이 없어서 잠을 자거나 음식을 먹거나 담소하는 등의 모든 행동을 뜻대로 하면서, 그것이 인천(人天)의 큰 복인 줄을 전혀 알지 못했으며, 편안히 이런 복을 누릴 적에 육도중생의 고통은 전혀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잠깐 편안할 때에, 온 몸을 꺾이우고 불에 태워지고 방아 찧듯 짓이기고 맷돌에 갈리는 고통을 당하는 지옥 중생들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견뎌야 했을 것이며, 구리 물을 마시고 피를 먹는 아귀 중생들은 얼마나 큰 고통을 당하고 있었을 것이며, 쇠로 자갈을 물리고 안장을 지우며, 칼로 베고 솥에 삶김을 당하는 축생들은 얼마나 큰 고통을 견디고 있었을 것이며, 비록 사람의 몸은 받았으나 추위와 주림에 시달리는 자나, 병들어 신음하는 자나, 권속과서로 이별하여 사는 자나, 옥에 갇힌 자, 세금에 시달리는 자, 물에 빠지고 불에 타 죽는 자, 뱀에 물리고 범한테 물려 죽은 자, 원한을 품고 억울하게 죽어 간 모든 중생들도, 또한 그 고통이 한량 없었을 것이나, 나는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부터는 잠깐이라도 안락할 때는 반드시 육도의 고뇌 중생을 생각하여, 마음에 올바른 뜻을 세워 하루 빨리 도과(道果)2)를 이루어 널리 함식(含識)3)을 제도하여, 그들이 모두 정토에 태어나서 퇴전하지 않기를 원하였다.


찰나라도 스스로 방심한다면 어찌 위로 부처님의 은혜를 갚고, 아래로 단월의 신시(信施)4)를 갚을 수 있으랴.힘써야 할 것이다.


1) 물질의 기본요소. 곧 지(地)·수(水)·화(火)·풍(風). 이 몸은 사대가 화합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2) 불도(佛道)의 과(果), 깨닫는 것.
3) 심식(心識)을 함유한 모든 중생, 곧 육도에 윤회하는 모든 중생.
4) 신도의 시주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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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덴 후의 느낌 2

부처님이 말씀하신 “사람의 목숨은 호흡하는 사이에 있다”하신 것을, 나도 늘 대중에게 일러 경책해 왔으나, 실제로는 뼈저리게 느끼지 못하다가 뜨거운 물에 온 몸을 데는 액난을 당했던 것이다.


처음에 내가 욕탕에 들어가려 할 때는 몸과 마음이 의기양양하였으나 잠시 후 끓는 솥 속에 발을 헛디뎌 거의 죽을 뻔했으니, 살아 남은 것은 큰 다행이요 용천(龍天)의 도우심이었다.

시간으로는 찰나였으나 이 때가 죽고 사는 분기점이었으니, 목숨이 호흡하는 사이에 있다 하신 것이, 어찌 진실한 말씀이 아니겠는가!


스님들이 부처님의 말씀에 대하여 남에게 권하기는 친절히 하면서 자신에게는 호흘히 하거나, 혹은 전혀 돌아보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이 때에 매우 부끄러워하고 놀라면서, 스스로를 크게 질책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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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덴 후의 느낌 3

나도 평소에 병중공부(病中功夫)에 대하여 말할 적에는, 필능가바차(畢陵伽婆蹉)1)의 소위 ‘진실로 깨달으면 몸을 잊어 버린다’한 것도 알고 있었고, 마조 대사의 소위 “병들지 않는 자가 있다”한 것도 알고 있었으며, 영가 대사가 말한 “비록 칼을 맞더라도 항상 평안하며, 설사 독약을 마시더라도 또한 한가롭다”한 것도 알고 있었으며, 조공(肇公)의 “사대(四大)가 본래 공하고 오온(五蘊)2)도 있는 것이 아니다”한 것도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발을 헛디뎌 뜨거운 물 속에 빠지는 액난을 당한 후, 처음부터 자세히 살펴 보았다.

이처럼 온 몸이 쓰라리고 아프기만 하니, 몸을 잊어버린다는 것은 무슨 말이며, 칼과 독약으로 살갗을 도려내 듯하거늘, 평안하고 한가롭다는 말은 무슨 뜻이며, 사대와 오온이 실제 나의 몸이거늘, 본래 공하여 있지 않다는 것은 또한 무슨 말인가.


이렇게 하여 평소의 간혜(幹慧)3)로는 도무지 일을 이룰 수 없으면서, 만약 정력(定力)4)이 없다면 죽음의 길에 복종할 수밖에 없어서, 저 구두삼매(口頭三昧)5)로는 스스로를 속일 뿐임을 알 수 있었다.
아! 힘쓰지 않을 수 있으랴.


1) 부처님 당시의 비구, 여습(餘習)이라고 번역한다.
2) 온(蘊)은 모여 쌓였다는 뜻이다.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의 다섯가지로 색은 물질이고 수상행식은 마음의 작용이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오온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본래는 일정한 본체가 없어 공(空)한 것이다.
3) 실효가 없는 지혜. 겨우 욕심에 젖은 습성이 다 했을 뿐 아직도 참다운 깨달음을 얻지 못해 그 효용(效用)이 없는 지혜.
4) 선정(禪定)의 힘이 능히 모든 산란한 마음을 부수어 버리고 마음을 한 곳에만 쏟게 함.
5) 다만 글자나 말로만 희롱하고 진실로 선(禪)을 닦지 않음. 









출처 : http://www.fulssi.or.kr/book/6/b19.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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