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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여행 09년 3월 14일 토요일
 선재마을  | 2010·12·19 19:12 | HIT : 4,179 | VOTE : 1,830 |
스위스 여행 09년 3월 14일 토요일
원통          | 2009·04·21 22:51 | HIT : 535 | VOTE : 46 |
          
1  KLM 항공

3월 14일 토요일 오후 드디어 나는 네델란드 KLM항공의 암스텔담 행 비행기를 탔다. 암스텔담에서는 취리히 행 비행기로 갈아타는 것이다. 고고한 유럽의 ‘네델란드 Royal 항공사’ 비행기를 ‘대한항공’보다 훨씬 싼 값에 타고 간다는 것이 신기했다. KLM 비행기의 밝은 파란색만 보아도 벌써 귀족 같이 된 듯 느껴졌다. 서쪽 오랑캐인 네델란드건만 내게는 그렇게 어느덧 귀족적으로 느껴지게 된 지 오래이다.  

여기서 서쪽으로 비행하는 일은 태양과 함께 가는 것이다. 태양의 속도와 비행기의 속도가 약간 차이가 나는데, 비행기가 약간 느리다. 태양과 비행기의 속도가 같다면 두시 35분 출발이라도 도착시간이 두시 35분일 것이다. 비행기는 태양보다 조금 느려서 오후 6시 15분에 도착했다.  

비행기는 운해(雲海), 구름의 바다 위를 계속 날아갔다. 열두시간은 길었고, 그날따라 재채기는 상당히 나를 괴롭혔다. 알레르기성이다. 요즘 이 알레르기성 비염(콧물)을 앓는 사람이 무척 늘어난 것 같다. 생물학적 현상이 아니라 사회적 현상이다.

다행히 창문 옆 자리를 얻어 간간히 밖을 내다 보았다. 그건 일찍 티케팅을 했기 때문이다.공항에서 별로 할 일도 없었으니까. . . 비행기는 흰 눈으로 덮인 험준한 산맥을 계속 지나갔다. 자세히는 몰라도, 알타이 산맥의 상공을 지나고 있으리라, 저 아래 보이는 것이 천산(天山)산맥이리라, 그리고 우랄 산맥이리라. . . . 전에는 도저히 가보리라고 엄두를 못 냈던 곳. 모택동의 죽의 장막, 크레므린의 철의 장막으로 싸였던 곳. 비록 하늘 위에서라도 내게는 시베리아를, 볼가강을 눈아래로 보면서, 공산주의도, 자본주의도 모를 눈덮인 첩첩산중울 넘는 기분이 새로웠다. 흰 눈으로 덮힌 장대한 우랄산맥과 알타이 고원은 공산주의도 자본주의도 모른채  의연히 버티고 있었고, 나는 이데올로기를 조소하듯이 그 위를 비행기를 타고 날고 있었다.

내가 감히 범접할 꿈도 꾸지 못했던 알타이 산맥이란 것이 고작 저 정도란 말인가 싶기도 했다. 물론, 그 속에 떨어지거나 갇힌다면 소리소문 없이 죽어나갈 인간의 목숨이란 대자연 앞에는 그렇게도 하찮고 보잘것없는 것이기도 하다는 생각과 함께. 그렇게 나는 비행기로나마 시베리아를, 크레므린 궁전을, 우크라이나의 옥토들을, 백러시아, 폴란드 땅을 경유하여 왔던 것이다.

KLM 항공은 한국인 승객들에게 라면을 나누어 주었다. 나름대로 치열한 하늘의 경쟁 시대에서 비지네스 차원의 배려 혹은 전략일 것이다. 그래도 동양들에게 콧대높았던 유럽인들,  내게는 고고하게만 느껴졌던 네델란드 항공사가 이제는 비행기에서 라면까지 내어주는 시대가 되었구나 싶었다. 그러나 그 라면 맛은 귀국 길에서라면 모르지만, 출국날부터 먹기에는  썩 좋지는 않았다. 암튼 그렇게 해서 나는 시베리아 상공에서 라면을 먹었다는 기록을 남기게도 되었던 것이었다.


4-2 유럽

비행기가 암스텔담에 다다르자, 바둑판 같은 농경지들이 보이고, 풍력발전기들이 기계적으로 도열되어 있는 풍경들이 나타났다. 마치 컴퓨터의 주기판, 영어로 MOTHER BOARD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과연 유럽은. . . 느낌으로라도, 우리 같은 사람들이 감히 범접할 곳이 못되는, 너무도 잘 짜여진 곳 같았다.  
암스텔담의 스키폴 공항에서 취리히 행 비행기를 두시간반동안 기다리며 나는 공항 곳곳을 탐색했다. 화장실이 지나치게 소박해서 그제서야 “유럽의 큰 공항도 인천공항보다 시시하군. . .” 하는  생각을 하였다.  
스키폴 공항의 특징은, 규모가 크기 때문에 여러 항로의 비행기가 많이 이착륙할 수 있고, 유럽의 중심공항의 역할 을 할 수는 있겠으나, 그 단점은 이착륙 출구간의 거리가 너무 멀고, 출입구 간의 이동을 단지 보행과 에스컬레이터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공항 내에서의 위치 이동에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다. 적어도 20-30분씩은 걸리기 때문에, 승객들이 갈아타거나, 혹은 출발하기 위한 탑승에도 일단 출구를 잘 못 찾으면, 혹은 출구가 바로 있으리라고 생각해서 정확한 시간에 나타나면 비행기를 놓치거나 시간에 쫒기기 쉬운 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시간이 중요한 항공 교통에서 이것은 대단히 심각한, 아마도 치명적인 단점이 될 것이다. 이것이 아마도 “이제는 스키폴보다도 더 좋은 공항이 많이 생겼다”고 하는 이유가 되겠다 싶었다.

공항 쇼핑 센터 들을 기웃거리며 초코렛, 치즈, 튜립꽃, 나막신 이런 것들을 보면서, 역시 이 나라도 관관객들에게 팔 것이라고는 이런 것들 뿐이구나, 혹은, 역시 유로화가 많이 올라서, (원화 가치가 너무 많이 떨어져서) 당분간은 코리안은 해외여행 않는게 좋겠구나. . . 이런 시덥지 않은 생각들을 하면서 취리히행 비행기 시간을 기다렸다. 취리히 행 탑승객 대기실에는 한국 학생 같은 여학생들이 있어서 반가웠다. “역시 오늘도 용감한 한국 학생들은 알프스 배낭여행을 많이 가는구나” 하면서 말을 걸었으나, 그들은 일본 학생들이었고, 영어에 자신이 없었으므로, 화들짝 놀라서 도망가기에 바빴다. “다이가꾸세 데스까?” 대학생이냐고 물었지만 (내가 대학교 선생 이니까 아무래도. . .)  그들은 그것도 아니란다. 저 나이에 대학생도 아니라면 뭐란 말인가. . . 요즘은 한국 학생들도 최저 학력이 전문대학이라는데.



4-3 취리히

취리히 행 비행기는 예정대로 취리히에 날아갔고, 감감한 밤중에, 밤 열시에 우리를 취리히에 내려 놓았다. 나는 예정대로, 가이드 북에서 보고, 인터넷에서 찾은 정보 대로, 취리히 중앙역 (Haupt-Bahnhof) 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하여, 그리고 비용을 최대한 절약하기 위하여, 취리히 일일 패스(one day pass)를 끊으러 공항 맞은 편 건물로 갔다.
공항 기차역은 예정대로 거기 있었고, 취리히 일일 패스는 예정보다는 2프랑이 더 인상된 19프랑에 팔고 있었고, 나는 그정도는 감수할 용의가 있다는 생각으로 스스럼없이 일일패스를 구입했다. “음, 19프랑이면 2만 오천원이 되는군. 하기야 인천 공항 왕복 리무진도 그정도는 하지 않는가. . .”

표를 사고 돌아서는데, 일본 여학생들이 나를 붙든다. 시내 가는 기차 타는 곳이 어딘지 내게 묻는 것이다. 하기야 취리히 놈들 보다야 말 붙이기가 좀 낫겠지. 나도 모르지만, 도와 준답시고 1번 승차대(플랫폼)으로 함께 내려갔다. “어, 여긴 아닌 것 같아. . . ” 허둥지둥 홈을 바꾸어 다른 차를 타고 자리에 앉았다.

그 일본 학생들은 늦은 밤에도 바젤까지 간다는 것이었다. 바젤 행 기차는 제대로 취리히 중앙역에서 바꾸어 탄다고 해도 자정이 넘어서 도착하는 것이었다. 우리 딸아이 나이의 그 학생들의 용기가 대단하다 싶었다. ‘바젤에서 숙소는 구했냐’ 물었더니 친구가 나온다고 했단다. 그러면 그러지. . .그러나, 그렇더라도 저렇게 천방지축 헤매면서도 겁 없이 이런 길을 나선 그들의 무모함에 비한다면 우리나라 학생들은 너무 소극적이 아닌가.
나는 앞자리의 취리히 놈에게서 물어봐서 그들에게 기차 갈아타는 것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었는데, 그 학생들의 반응이 이상했다. 알고 보니, 나는 그들에게 우리말로 설명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드디어 취리히 중앙역에 내려, 일본학생들을 바젤행 프랫트폼까지 바래다 주고나니, (조그만 여학생들이 자기보다 큰 트렁크들을 들고 왔다. 안스러운 것 보다도 무모하게 저지르는 뱃장이 대견해 보였다) 그제서야, 유럽 땅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것을 느꼈다. 시간은 열한시 가까워 오는데, 이 밤에 유스호스텔 가는 전차나 있을런지 모르겠다. 있겠지.

가이드 북에 있는대로 Wittliberg 행 전차를 타고 Morgenstal에서 내려야 한다. 물어 물어, 7번 전차를 타고 야심(夜深)한 취리히 시내를 차창으로 구경하며 촌구석이라고 생각되는 Morgenstal 에 내렸다. 앞서서 걸어가는 놈을 보니, 밤 늦게 큰 배낭 메고 가는 놈이 유스호스텔 가는 놈 아니겠나 싶어서 쫓아 갔는데, 아무래도 그놈 방향은 아닌 듯 싶었다.  그래 그놈  따라가기를 그만두고, 안내서와 지도를 살펴 보는데, 일치하는 거리나 지명이 없었다.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시간은 열두시 가가이 가고 있었다. 지나가는 젊은이들이 있었으나, 자기들도 이동네 사람이 아니란다. 날씨도 추운데, 인적도 없는데 상당히 막막했다. . . .
다시 용기를 내어 두리번 거리니, 버스정류장에 지도가 그려져 있는데, 자세히 보니 유스호스텔이 표시가 되어 있었다. 보따리는 이미 상당히 내게 무거워져 있었고, 무거운 보따리와  함께 더 이상 걷기도 힘겨워져 있었다. 그렇다고 길바닥에서 자기에는 상당히 추운 날씨였던 것이다.

더 이상 방법은 없다. 대충 감으로 때려 잡고서 어둑한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니,         Muttschellen 이라는 길 이름이 나오는데, 그건 유스호스텔의 주소에 해당하는 길이었다. 번지수를 계산해 보고 나서야 (서양의 주소는 길이름에 순서대로 번지수를 붙인 것이다)  이 길을 따라 내려가면 되리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깊은 밤 취리히의 변두리에서 무거운 가방을 질질 끌며 찬바람을 맞아가며 유스호스텔을 다행히도 찾아내었다.
대개의 유스호스텔은 방 열시가 통금시간이다. 그 때까지는 들어와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취리히 유스호스텔은 그런 통금시간이 없다. 열두시 가까이에야 유스호스텔에 들어서서 “늦게 와서 미안하다”(영어로 했다) 고 하니까, 흔 한 일인데 뭘 그런 말씀을 하시냐는 듯한 반응이었다.

미리 한국에서 예약을 해 두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정말 한데서 꼬박 얼어죽을 뻔했다. (뭐 그렇다고 해서 죽기가지야 하겠냐마는). 왜냐하면 취리히의 숙소란 (그리고 대개 대도시의 유스호스텔은) 적어도 며칠 전에는 예약이 다 끝나기 때문이다., 당일 그것도 12시 가까이 되어서 잠자리를 얻는 일은 대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유스호스텔이라고 해도, 4인실 (소위 도미토리)  침대를 하나 얻는 데에 42프랑이 들었다.  우리 돈으로 거의 6만원! 스위스 잘못은 아니다. 우리 돈 가치가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아, 잘난 대한민국. 그 대한민국 국민으로 소박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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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스위스 유스에는 락카가 있다. 별로 필요없지 싶은데, 실제로 여권이나 돈의 위험을 생각한다면 쓰고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락카 열쇠가 열리지 않아서 물어보니, 2프랑 짜리 동전을 넣어야 한단다. 삼천원? 락카를 빌려주고 그렇게 돈을 벌어?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2프랑짜리 스위스 주화는 그저 락카 키를 돌려받기 위한 수단이었다. 락카는 언제라도 다시 열 수 있었고, 그때마다 동전은 다시 나왔다, 우리나라 이마트에서 손수레를 사용하는데 50원짜리 주화를 사용하는 것과 같았다. 그럼 그렇지. . . .맘에 드는 유스. 낮에 외출 시에는 1층에 큰 라카도 있었는데, 그건 5프랑짜리 큰 주화를 사용한다. 알고 나니 고맙고 편리했다.
     
  퍼옴--역시, 外境(6근 을 포함하여, 물질이)이 實在하는가 라는 논쟁 같습니다.  선재마을 10·12·19 4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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