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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사람에게도 불심이 있다" 운주사의 불상
 남유선  | 2008·10·25 16:34 | HIT : 5,275 | VOTE : 2,463 |
"보통사람에게도 불심이 있다" 운주사의 불상



'운주사와 함께 떠나는 불교 미술' 세 번째 시간으로 이번에는 운주사의 불상들을 살펴보자. 불상을 살펴보면서 우리 마음의 때를 씻고 자비의 마음을 갖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운주사에는 특이한 탑만 있는 것이 아니다. 탑보다 훨씬 많은 약 100분의 불상이 모셔져 있다. 불상 또한 탑만큼이나 운주사의 특성에 맞게 그 다양성과 특이한 외모를 자랑하고 있다. 불상은 석조불감, 와불, 무리 지어 있는 6개의 불상군 그리고 여기저기에 따로 있는 불상과 마애불로 나누어진다. 이중에서 가장 세인의 관심을 끄는 와불은 다음 시간에 자세히 알아 보고 오늘은 나머지 불상들의 모습에 대해 개략적으로 살펴보자.

운주사의 중심 '석조불감'

먼저 석조불감을 보도록 하자. 경주 남산에 가면 석조불감과 비슷한 칠불암 사면불이 있는데 이는 사면에다 불상을 조각한 것이다. 사면불은 부조형식으로 표현한 반면, 석조불감은 광배(光背.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신령스럽고 밝은 빛을 상징하는 불상의 한 구성요소로 불신의 뒤쪽에 표현한 것. 후광(後光). 신광(身光). 광염(光焰), 두광(頭光)이라고도 함)와 독립된 불상으로 제작되어 있다.

또한 돌로 일종의 전각을 지어서 그 속에 모시고 있기에 그 독특함이 더하다. 석조불감은 '동국여지승람'이나 여타 문헌의 운주사를 언급한 내용에서 늘 다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석조 불감이 운주사의 여러 불상 중에서 가장 중심적인 신앙처로 주목받았다는 증거이다. 한마디로 노천 법당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불감 속을 들여다보자. 불감 내에는 1개의 판석을 세워 공간을 양분하였고 상단은 터져 있다. 양 측면은 1개의 판석을 세워 놓았고 전면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줘 있는데 좌우는 벽이고 중앙은 열려 있다. 여기서 주목할 곳이 있는데 중앙 밑 부분을 자세히 보면 여닫이 문 시설로 보이는 구멍이 상단 좌·우에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원래 문이 달려 있었음을 알려 준다. 그리고 지붕에는 굵은 용마루(지붕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수평마루)가 놓여져 있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보아 석조불감은 운주사의 중심 법당이라고 볼 수 있고 여전히 운주사에서도 부처를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고 석조불감을 더 깊이 감상하려면 두 불상의 모습을 대비해서 보는 것이 좋다.

앞뒤로 몇 번 왔다갔다하면서 두 불상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살펴보면 불상에 대해 더욱 잘 알게 될 것이다. 그런 것은 미술학도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관심이 있으면 아무런 지식이 없다고 해도 상관없다. 각 부분의 명칭이나 조각방법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나에게 어떻게 보이는가와 왜 이렇게 조각했는지에 대한 답을 스스로 알아보는데서 진정한 답사의 의미를 찾을 수 있고 유물과의 교감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끼리끼리 모여 있는 불상군

다음으로 각 무리를 이루고 있는 불상군은 총 6곳으로 나누어져 있다. 6개 불상군의 형태는 대체로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대체로 좌상(앉아있는 모습)을 주존(중심 부처)으로 하고 좌우에 입상(서있는 모습)을 협시불(보조 부처라고 생각하면 됨)로 안치하고 있다. 그리고 주존은 좌상이라도 옆의 입상보다 훨씬 크고 협시불이 최소한 5분 이상으로 전통적인 협시불 수(2분)보다 많이 조성되어 있다.
그 중에서 입구에서 2번째로 조성되어 있는 불상군은 영화 '아제 아제 바라아제'에 특별출연하기도 했다는데 영화를 좋아하는 분은 눈치 채셨는지도... 2번째 군의 주존은 입상으로 높이가 4.75m인데 운주사 불상 중에서 가장 키가 크다.

불상의 모습을 보면 그래도 탑보다는 파격미가 조금 덜하다. 그것은 불상이 부처님 모습을 표현했기 것이다. 그럼에도 운주사의 불상은 그 다양성을 자랑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입상이 약 80% 차지하고 있다. 얼굴 모습은 대부분 약하게 표현되어 있는데 부처님의 특징인 백호(양미간의 중간에 위치. 석굴암 본존불을 생각하기 바람)는 석불 좌상에만 표현 되어있고 눈과 입도 대부분 가늘게 조각되었다.

운주사 불상에서는 코를 주목해야 하는데 그나마 가장 장대하게 조각되어 있다. 하지만 현재는 대부분 파손되어 있는데 이는 운반 도중 넘어져서 그렇게 된 것도 있지만 인위적으로 훼손된 것도 있다. 아마도 불상의 코를 갈아 마시면 아들을 얻는다는 미신의 영향이리라...
부처님의 특징 중의 하나인 삼도(목에 표현된 3개의 줄)도 전체 불상 중에 약 20%정도만 표현되어있다.

다음으로 불상의 가장 큰 특징 중에 하나인 손 모양(수인)을 살펴보자.
운주사의 불상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수인은 가슴 앞에 '∧'모양으로 손을 모으고 있는 것임을 아마도 다녀온 사람들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이 모양이 무엇을 나타내는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비로자나불의 지권인 또는 합장한 모습이지 않을까라는 추측만을 할뿐인데 정확한 해석이 나온다면 운주사의 성격 규명도 훨씬 쉬울 것이다. 왜냐하면 수인은 그 불상이 어떤 부처님인가를 알려 주며 이로 미루어 그 절이 어떤 사상을 가진 곳이라는 것이 밝혀지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나타나는 수인은 항마촉지인, 시무외인 등이다.
다음에 운주사 갈 때 수인 모양을 생각하면서 본다면 재미가 더 하지 않을까? (수인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더 자세한 조각 이야기는 오히려 머리를 복잡하게 하고 불상이 싫어지게 될 지도 모르니 이쯤에서 그만 하자. 다만, 왜 이렇게 표현이 조약(?)한지에 대해서 각자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분명 무슨 의미가 있을 듯 한데...

운주사를 돌아다니다 보면 곳곳에 홀로 있는 불상을 볼 수 있다. 전문가의 말로는 아마도 불상군에서 이동된 것이라고 하는데 과연 누가 무슨 목적으로 불상들을 옮겼을까?

또한 불상들을 보면 조성하다가만 것도 몇몇 보이는데 무슨 연유로 그들은 그 생명을 제대로 꽃피우지도 못하고 미완의 부처로 남게 되었을까... 이들의 모습에서 사회적 모순 속에서 비참한 생을 마감한 옛날 사람들의 한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운주사에는 돌부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운주사에는 돌부처만 있는 것이 아니다. 80년대 발굴시 금동여래입상과 금동보살입상이 출토되었다. 그런데 이 유물들의 제작시기가 9세기경으로 추측되고 있는데 이는 운주사의 창건 시기보다 상당히 앞서기 때문에 아직 더 고민해봐야 할 문제라고 한다. 또한 예전 건물지에서 소조로 만든 불두(佛頭)가 발견되었다는데 이걸로 봐서는 이 곳 운주사도 천불전이나 오백 나한전(법당 안에 천 개의 불상이나 오백 나한상을 만들어 모신 곳)이 있었지 않았을까 라는 추측을 하고 있다. 물론 아직은 추측에 불과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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