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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다비장 가는 길
 신지견  | 2008·10·27 10:52 | HIT : 8,623 | VOTE : 2,9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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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茶毘場 가는 길

신지견<소설가>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
날∼ 좀∼ 보∼소 ♩♪∼

핸드폰에서 멜로디가 울린다. 얼른 귀에 갖다대니 느린 목소리
가 '이보게' 그런다. 법랑(法朗)이었다. 그의 본명은 김춘식, 나는
그를 법랑이라고 불렀다. 그는 어려서 할머니의 치마끈을 잡고
따라와 절 집에 맡겨졌었는데, '법랑'이란 노장이 다시는 사바세
계의 어지러움 속에서 노닐지 말라고 지어준 이름이었다.
그런데 그 바램과는 달리 법랑은 원효의 소성(小性)거사 시절처
럼 사바세계의 저자거리에서 떠돌았다.
하지만 나는 법랑이 아무 일에나 거리낌이 없이 원효대사처럼
'호로박'을 두드리며 '무애가(無碍歌)'를 부르고, '무애의 춤'을 추
고 다니는지 어떤지 그것까지는 몰랐다.
"사복(蛇福)이 원효를 찾아와서 그대와 내가 옛날 경을 싣고 다
니던 암소가 죽었으니 장사지내줌이 어떠하겠는가, 했다는 이야
기 알어?"
"노장님 말이야?"
어제 아침엔가, 그대가 그 동안 어떤 식으로 변질되었던 간에
한번 아버지는 평생 아버지이듯 석(釋)씨 종문에서도 한번 맺어
진 스승은 영원한 스승이라는 이야기와 함께, 노장님이 세수가
다해 열반에 들었음을 알려주었던 것인데 그에 대한 화답으로 전
화를 넣은 것 같았다.
"만장을 써들고 가고 싶다만…."
"만장은 그만 두고 밥값이나 갚자구."
"걸사의 밥값이라…."
그는 말끝을 흐렸다. 만일 그에게 치러야할 밥값이 있다면, 본래
우리들 속에 내장되어 있는 지혜를 노심초사, 일깨워 성스러운
흐름(聖流)에 들게 해준 교조의 혜명(慧命)이 오늘날까지 면면이
이어져 내려왔기 때문일 것이다. 첫출발이야 지극히 정(定)하고
공적한 가운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지혜와 총명으로 시작된 집
단이긴 했지만, 오랜 세월 사회의 부침과 더불어 잘못 챙겨진 특
권의식 같은 것을 누려온 부류가 없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 타성에 얽매어 세상을 두루 비춰야할 밝음이 요즘에 와서
꺼져 가는 촛불 같다느니 어떻다느니 하는 비판이 없지는 않으
나, 그래도 노장님은 법랑에게 그것을 올바로 잇게 할 책임을 주
었고, 또 그것을 제대로 이행 못했을 때는 그만한 대가를 치르게
할 책무도 함께 갖고 있었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것이 올바른 스
승의 책무이고, 한번 맺어진 스승은 영원한 스승의 몫이기 때문
일 것이다.
"뭘로 밥값을 갚나?"
"그걸 몰라서 묻나?"
"오늘 다비식을 한다고 그랬지?"
물론 나는 산을 내려간 이후 법랑에 변화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그러면서도 '다비식'이라는 말이 의례적인 이야기로
서 대답이 아니기를 바랐다.

다비장은 이른바 '토굴' 근처에 마련되어 있었다. '토굴'은 노장
님이 만년을 보냈던 곳이다. 나는 그리로 차를 몰았다.
낚싯대를 드리운 낚시꾼들이 물가에 앉아 찌를 바라보고 있는
저수지 가까이 이르렀을 때 길이 두 갈래로 나누어지고 '서 있는
돌'이라는 팻말이 거기 서있었다.
"돌이 서있다?"
법랑이 무심코 팻말을 바라보면서 던진 말이었다.
"무용단 이름이라나 봐, 왜 전에 유럽으로 인도로 공연을 나다
니며 이름을 떨친 여자 무용수 있었잖아?"
"무슨 전위무용을 한다던…?"
팻말 밑에 화살표가 마을 쪽으로 그려져 있고, 그 밑에 '국제
Arts Festival'이 열리고 있다는, A4용지 두어 장 크기의 포스터
가 붙어 있었다.
"맞아, 그 무용수야, 이 안 마을 숲 속 어디에서 산다나 봐."
나는 반대편 길로 차를 몰았다.
"돌은 서있는 것이 아니다."
그가 이야기를 계속했다.
"앉아있는 것도 아니고 누워 있는 것도 아니다. 높지도 낮지도,
희지도 검지도 않는데 꽃피어 고운 모습 보이고 낙엽 져 늦서리
내리니, 천둥은 왜 이리 요동치는가. 오호라, 번개도 빛이 아니거
늘…."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 같다?"
그 말에 그는 겸연쩍은 웃음을 씩, 웃었다.

노장의 주검이 연꽃봉우리 모양의 연화대 안으로 들어가고 입구
가 봉해졌다. 새 생명이 자궁을 열고 세상에 나올 때 난막(卵膜)
이 감싸고 있었던 것처럼.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인 노장의 주검
을 이제 연꽃봉우리 모양을 한 섶 무더기가 초분처럼 감싸고 있
었다.
난막과 섶 무더기의 차이가 무엇일까?

다냐타 옴 아리다라 사바하…,

합장을 한 사람들의 염불소리가 계속되는 가운데 맨 앞 몇 사람
이 작대기 끝에 불을 붙였다. 작대기는 횃불이 되어 연화대 주변
을 빙 둘러쌌다. 그러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던 듯 서쪽에 있는
사람이 연화대에 불을 붙였다. 곧 그것이 신호가 되어 횃불을 든
사람들이 노장의 주검을 감싼 섶 무더기에 차례로 불을 놓았다.

삼연(三緣)이 몸을 이뤄 잠시 태어나
사대(四大) 흩어지니 홀연히 공(空)이로다.
그 몇 해이던가, 환상 속 세상을 헤매고 돌다
홀가분히 벗어나니 정처가 없구나.
오늘 여기 여럿이서 잠깐 이르나니
그대가 간 곳이 어느 곳인가?
목마를 거꾸로 타고 재주를 넘으니
활활활, 타는 불길에 찬바람이 이네.
다냐타 옴 아리다라 사바하…,

짙은 연기가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노장은 자기의 육신을 불태움으로써, 평소 도력 속에 감추고 있
던, 스스로의 생의(生意)적 욕망을 불꽃으로 보여주기나 하려는
듯 투두둑, 소리를 내면서 붉은 혓바닥 같은 불길이 비가 내리다
그친 잿빛 하늘을 휘저어대고 있었다.
운집한 사람들이 염불을 외면서 불길로 치솟는 노장의 주검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법랑의 얼굴을 곁눈질해 보았다. 대부분, 조금은 슬프고 조
금은 허탈한 모습의 사람들과는 달리 그는 불길이 되어 타오르는
노장의 주검에서 저만큼 비켜 선 자세로, 배를 앞으로 쑥 내밀고
뒷짐을 지고 서있었다.
눈 꼬리에 잔잔한 미소가 고여 보였다. 입 꼬리도 그랬다. 꽃잎
에 나비가 사뿐히 내려앉는 모습을 바라보는 모습이 저럴까, 입
술의 양쪽 꼬리가 말려 올라감으로 해서 옴쏙해진 볼에 미소가
고여있었다.
"고얀지고…."
나는 혼잣소리로 중얼거렸다. 지금 법랑은 웃고 있는가, 울고 있
는가. 불타고 있는 노장의 주검 앞에서 어찌 저리 담담할 수가
있는가.
"웃고 있군?"
내가 속삭이듯이 물었다.
"웃는다고 어찌 그것이 즐거움일 수 있겠는가."
그가 돌아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그럼?"
"언젠가는 버리고 가야야 할 거푸집이 타는구만…."
"꼭 그렇게 대꾸를 해야만 되겠어?"
"타는 것은 불이지 노장님이 아닐세. 죽는다고 죽은 것이 아니오, 탄
다고 타는 것이 아니거늘…, 이런 시가 있지, 달이 중봉에 숨으니 부
채를 들어 그것을 알리고, 바람이 하늘에서 쉬니 나무를 흔들어 그것
을 알리도다. 내 말 듣고 있나? 노장님은 바람처럼 갔지만 다시 빛으
로 돌아올 걸세."
"그게 그 동안 밥값인가?"
그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합장이나 하라구."
그때서야 법랑은 가슴에 손바닥을 펴 마주 대고 고개를 숙였다. 그
러나 그의 얼굴에는 다른 기색이 나타나 보이지 않았다. 코흘리개로
할머니의 손에 끌려 노장한테 맡겨져, '거둥에 망아지 따라다니듯'
노장님을 아비로 알고 따르며 성장한 법랑이 불타고 있는 노장님의
모습을 바라보는 시선은 사뭇 다를 듯싶었는데, 그는 끝내 눈물을 보
이지 않았다. 슬픔을 잃어버렸을까? 눈물이 메말라버렸을까,

나는 법랑의 점퍼 입은 모습을 감방 안에서 처음 보았다. 점퍼 입은
모습이란 그가 중 옷을 벗고 저자거리 사람들의 옷으로 바꿔 입었다
는 이야기이다.
그 때, 나는 노장님을 대신해 감방에 들어가 있었다. 그때만 해도 무
슨 객기가 남아 있었던지, 법랑이 '속한이' 옷을 입고도 잊지 않고 내
면회를 올 만큼 쉽지 않은 발걸음을 했는데, 나는 그와의 인간적인
신뢰와 우의의 끈적거림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속한이' 옷을 입
은 것에 대한 배신감으로 그를 대했다.
"부드럽던가?"
한 치 앞도 못 내다보면서 그의 달라진 외형에 여자를 연관시켜 이
죽거렸다. 왜냐하면 중이 '속한이' 옷을 갈아입는다는 것은 십중팔구
여자와의 관계 때문이었다.
"그야 부드러웠겠지…."
"지랄 마라."
그러나 그의 대답은 짧았다.
"아랫도리 비린내 풍기며 거품 뿜느라 날마다 바쁠 텐데 무슨 의기
가 남았다고 면회를 다 오고…."
"나 원 참, 이 녀석은 벽돌암에 들어앉아서도 화두가 여전히 그 자
리에 물구나무로 서있네."
나는 그날 면회실을 나가는, 그의 얼굴에서 쓸쓸한 연민을 보았다.

그때 나는 법랑이 옷을 바꿔 입은 것 하나만으로 그의 어떤 행위에
도 동의하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나는 노장님을 하늘처럼 받들었고,
그리고 노장님만이 내 생명이 붙어있을 때까지 궁극의 한가지 일을
의심 없이 깨우쳐줄 버팀목으로 삼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내가 노장님을 '빠스락 어른'이라는 우스개 소리로 정의한
것은 그 뒤의 일이었다.
의성어 '바스락'을 굳이 '빠스락'이라고 경음을 쓴 것은, 그래야 노
장님의 성격에 좀 더 가까이 근접된 표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첫째 '빠스락'이란 조용하면서도 조용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 말은
고양이 쥐 놀리듯 어르고 뺨쳐 등골을 빼는 잔재주가 숨어 있었기 때
문이다.
둘째 건드리면 건드린 만큼 '빠스락'하고 반응한다는 점이다. 사람
의 성격이 물이라면 모르겠거니와 건드려서 반응하지 않을 사람이 어
디 있으리요 마는, 이 어른의 경우 건드리면 건드린 만큼 즉심즉불,
그 자리에서 반응한다는 이야기이다.
셋째 '빠스락'은 균형감각이 살아있는, 노장님 나름의 독특한 처세
술로 연결되어 있었다. 여기서 말한 균형감각이란 한쪽이 빠스락하면
덩달아 빠스락하는 것이 아니라, 때에 따라서는 없는 듯 감추어져 있
다가 나중에 소리가 필요할 때 가차없이 '빠스락'하고 효과를 낸다는
점이다.
넷째 '빠스락'은 어떤 새로움에 대한 갈망, 어떤 변화에 대한 충동
으로 한 발 앞서 새로운 위치를 점거하기 위한, 그래서 사람들의 눈
에 띄기를 희망하는, 확인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빠스락'은 노장님의 지나친 결벽증의 소산으로 대개는
예외라는 것이 없었지만 어쩌다 예상치 못한 불가사의한 일로 예외를
인정해야할 결과를 가져왔을 때, 저축해둔 물건처럼 요긴하게 사용되
기도 했다.
나는 이렇게 '빠스락'이란 낱말로 노장님을 분석 정의해 보았지만,
그 후로도 무엇하나 후련히 드러난 것이 없어서 계속 고민에 빠진 적
이 있었다.
고민에 빠졌다는 이야기는 갈피를 잡을 수 없다는 말과 동의어로 보
아도 좋다. 왜 그러냐 하면 노장님은 아주 능란하게, 그리고 자주 대
칭 법을 구사하고 있어서 더욱 그렇다. 있는 것은 없는 것, 없는 것은
있는 것, 가는 것은 오는 것, 오는 것은 가는 것,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는 것으로, 노장님은 곧잘 묻고 곧잘
대답을 요구했다. 긴 것은 짧은 것, 짧은 것은 긴 것, 굽은 것은 곧은
것, 곧은 것, 굽은 것, 기쁜 것은 슬픈 것, 슬픈 것은 기쁜 것…. 처음
에는 그 대칭들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나는 몰랐었다. 그런데 노
장님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대칭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또 그 대칭을 즐겨 사용함으로써 세상을 사는 요령, 세상을
재는 잣대가 되어준다는 점까지 알게 되었다.
하마터면 나는 사문(沙門)에서의 처신은 '빠스락'과 '대칭의 논리'
가 조화를 이룬 것으로 생각할 뻔했다. 더구나 차갑고 번쩍이는 노장
님의 눈빛은 그 같은 대칭구조와 잘 맞아떨어져 조화를 부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매의 눈을 가까이서 본 적은 한번도 없다. 언젠가 텔레비전에
서 보라매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방영하면서 매가 사냥하는 모습을 비
쳐준 적이 있었는데, 나는 그때 초롱초롱 빛나던 황갈색 매의 눈에서
노장님의 눈빛을 연상한 적이 있었다. 타원형으로 구부러진 날카로운
부리와 조화를 이루며, 가죽장갑을 낀 손가락 위에 앉아 있다가도 사
냥감이 나타나면 황급히 공중으로 날아올라 사냥감을 향해 수직으로
내려꽂히는 눈빛은 어찌 그리 노장님의 눈빛과 흡사했던지. 빛 푸른
납자(衲子)의 눈빛이 그런 것일까….

'빠스락'만 아니라면 나는 지금도 그 눈빛을 좋아했을 것이다. 언젠
가 나는 인간계에 태어난 값은 한 살림 끝장을 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봄 한철을 노숙도 마다하지 않으며 산하를 떠돌다 장마가 시작된 7월
어느 날 노장이 머물고 있는 암자로 찾아가,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바
라보며 하루를 기다려 노장님을 만난 적이 있었다.
노장님을 만나게 된 시각은 땅거미가 내릴 즈음이었다. 노장님이 숙
소로 쓰고 있던 암자 아래 2층 벽돌건물 거실 안으로 들어섰을 때,
노장님은 행건을 풀고 막 한쪽 양말을 벗고 있었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 거실 바닥에 엎드려 삼배(三拜)를 시작하자
노장님은 예의 매의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이게 누구야?"
한번 절을 하고 일어나 두 번째 절을 하려고 거실 바닥에 엎드렸을
때 노장님은 벗은 양말을 손에 들고 벌떡 일어섰다.
"밤중에 이거 도둑놈 아냐?"
두 번 절을 하고 일어났을 때 노장님은 나를 걷어찰 자세가 되어 있
었다.
예상치 못한 노장님의 언동을 끝까지 감내하고 삼배를 해 마친 나는
엉거주춤 일어서서 노장님을 바라보았다. 노장님은 그때 무엇이 그리
급했든지 한쪽 손에는 행건, 한쪽 손에는 양말을 쥔 채 바지가랑이를
잡고 꽥, 소리를 내질렀다.
"빨리 나가지 못해!"
그때가 나는 노장과의 두 번째 대면이었다. 정황으로 미루어보건대
노장님은 그날 시자로부터 미리 전화로 내가 그곳에 와서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전달받았을 터였다.
"저는 도둑이 아닙니다. 스님, 꼬박 하루를 기다려 열려진 문으로 은
사님을 찾아왔습지요."
"뭐야?"
한마디만 더했다가는 걷어찰 것 같은 기세였다. 거실의 불빛이 희미
하지만 않았다면 나는 노장님의 날카로운 눈빛을, 사냥감을 향해 기
세 좋게 내려꽂히는 맹금류의 그것으로 착각할 뻔했었다.
"밤중에 은사가 어디 있어?"
그때, 나는 산문(山門)의 신참이었으므로 그쪽 법도에 익숙하지 못했
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때 '깨달음에는 밤도 낮도 따로 없다'는 대꾸
를 하지 못했을까, 그런 아쉬움은 아마도 두꺼운 내 속기에 가려 대
분심(大憤心)의 결의가 뭔지를 몰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튿날, 나는 내 쪽에서 노장님과의 대면을 기피해 버렸다. 그런데
뜻밖에도 노장님으로부터 '나와 보라'는 전갈을 보내왔다.
내가 노장님 앞에 불려나갔을 때는 아침식사를 막 끝마친 뒤였다.
"나를 안다고?"
"네, 전에 뵀었습니다."
나는 산문으로 들어 온지 얼마 안 돼, 노장님을 찾아 뵙고 곧 제자
가 되겠다고 인사를 드린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 뒤 대부분의 사람
들은 나를 노장님의 제자로 알고 있었다.
"나는 너를 만난 적이 없다."
'없다'고 하면 '있다'로 알아들어야 대칭에 맞다. 그런데 그때만 해
도 내 귀에는 그 말이 대칭으로 들려오지 않았다. '없다'고 하면 '없
는 것'으로 아무런 꿍꿍이가 없이 들렸었는데 아마도 그것은 그쪽 집
안의 미끄러운 방 때가 묻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노장
님은 실망스럽게도 나를 '나와 보라'고 해놓고 기껏 한다는 소리가
'나는 너를 만난 적이 없다'였다. 그것이 이 집안 방 때의 연조가 보
여주는 차이일까.
노장님은 방을 나와 요사 채 앞을 가로질러 산문을 내려가는 계단으
로 나왔다. 그리고 막 계단을 내려서면서 뒤따라온 나를 돌아보고 말
했다.
"부처가 은사다."
나는 계단을 내려가는 노장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어쩌면 이것으
로 노장과는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 뒤 법랑을 만남으로 해서 나의 예견은 빗나가버렸다.
"장난이 좀 심했군."
"장난이라구?"
"설중단비(雪中斷臂)를 쓸 사람한테 써야지…."
그랬었군, 나는 웃었다. 그때, 나는 혜가대사처럼 팔뚝을 잘라 바칠
만큼 도에 목말라 있지도 않았지만, 그 뒤 양말을 벗어들고 걷어찰
기세로 고함을 지르던 노장님을 되려 내 쪽에서 애교 있게 받아들임
으로써 교감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교감이 이루어지고, 나로서는 첫 안거를 마친 다음 노장님으로부터
이름을 받았다.
그리고 노장님을 모시게 되었다. 그때 노장님은 교단의 중요요직에
있다가 자리를 내놓고 나와 앞으로 전개될 교단과 사회의 돌아가는
추이를 예의 주시하고 있던 때였다.
그런데 노장님으로부터 어떤 변화의 조짐이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그 뒤 시일이 그다지 오래지 않아서였다.
그때 내가 느낀 변화의 조짐이란 오래 몸담아왔던 교단으로부터 노
장님은 모종의 탈출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징후였다.
하지만 나로서는 노장님이 교단으로부터 탈출을 염두에 둘 만큼 변
화를 갈망하는 요인이 무엇인지 그것까지는 알 수 없었다.
적절한 비유가 아닐지 모르지만 '그리스도'가 타성화한 유대교 장로
들의 교조주의에 반기를 들었던 것처럼 어쩌면 노장님은 그때 달갑지
않은 냄새만 풍기는 기존 교단의 교조주의에 밀려나 스스로 '인자'가
되기로 작정했을지 몰랐다. 차후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 죽임을 당하
리라'는 각오로….
이 비유가 과장이라면 루터(Luther)쯤으로 끌어내려도 될 듯싶다. 루
터가 '인간은 신앙에 의해서만 신의 나라에 도달할 수 있으며 성서는
우리에게 신의 도(道)를 가르친다'고 주장하면서 면죄부를 판 교황의
절대교권을 부인함으로써 프로테스탄트를 이루어냈던 것처럼, 오랫동
안 교단의 요직에 몸담아왔던 노장으로서는 부조리와 내분으로 얼룩
진 교단의 여러 요인으로부터 새로운 일을 꾸미지 않으면 안 되겠다
고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그것은 교단에 대한 개혁의 명분이
요, 이해다툼으로부터 혁신의 요구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노장님의 신변에서 일어난 작은 변화일 뿐, 내가 보
기에도 노장님은 교단의 개혁에 앞서 자신의 목을 내놓을, 담 큰 자
세라기보다는 예의 '빠스락' 논리에 더 경도된 느낌이었다.
더욱, 나의 가슴을 졸이게 했던 것은 안타깝게도 노장님의 그 변화
의 징후가 기존 질서에 도전함으로써 살아남겠다는 생존전략의 도박
처럼 비쳐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때 '개혁'과 '혁제(革除)'의 차이를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이를테면 혁제는 혁명처럼 절대적인 힘을 요구하고 있는 반면 개혁은
혁제만큼의 힘이 없이도 가능할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뿐만 아니
라 개혁이나 혁제는 그 기저에 반드시 변화에 대한 갈망이 깔려 있
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노장님의 변화에 갈채를 보내는 입장에 서지
않을 수 없었다.
경도된 '빠스락' 논리만 아니라면 그것은 갈채를 받을 일이지 비난받
을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일의 서막은 노장님이 젊은이들의 신행단
체의 지도자로 추대되면서 시작되었다.
나는 그때 종교가 정치적 환경으로부터 자유스럽지 않다는 것을 알
아가기 시작했다. '유신'의 헌법 아래서는 종교가 권력이 요구하는 질
서로부터 완전히 자유스러울 수 없었다. 말하자면 종교적 집회까지도
엄격하게 제약을 받아야만 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의 찬양을 배경에
깐 집회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집회라면 허용조차 되지 않던 시절
이었다. 그것이 억압된 사회에서의 종교가 갖는 한계였다.
'유신'의 생트집이 노장님의 집회라고 가만 놔둘 까닭이 없었다. 그
런데도 노장님은 그 어려운 간극에서 어렵게 줄을 대 순수 구도(求
道)적 모임임을 내세워 집회 허락을 얻어냈던 것이다. 그리고 노장님
은 그 집회에서 종교 이외의 문제에 대해서는 굳게 입을 다물었던 것
이다.
그러나 탈출구가 없던 그 시절, 눈빛으로만 살아 있던 젊은이들에게
는 노장님의 집회가 유신에 대한 불복종의 이미지로 부각되었던 것이
다. 그것만으로도 대성공이었다.
그런데 조그마한 틈만 생겨도 탈출구를 삼고자 했던, 그 시절 젊은
이들의 뜨거운 피가 살얼음을 밟듯한 노장님의 집회를 하룻밤 사이에
'유신반대집회'로 뒤집어놓았던 것이다.
그때, 노장님이 진정으로 '인자'를 자처했더라면 '사람들의 손에 넘기
워 죽임을 당하고' 그 뒤 '부활'을 했어야 했다. 그런데 예의 그 '빠스
락 논리'로 곤경의 연결고리를 재빨리 끊고 빠져나갔고, 내가 그 집
회의 연결고리가 되어 조사를 받고 대신 '죽임을 당할' 만큼 곤욕을
치렀던 것이다.

그때, 나는 감방에서 또 한가지 반갑지 않은 소식을 접했다. 반갑지
않은 소식이란 내가 좋아하고 가까이했던, 나에 앞서 노장님을 모셨던
법랑이 조사관문(祖師關門)을 뚫겠다고 날씨 따뜻한 남쪽지방으로 내려
갔었는데, 어이없게서리 '날속한이'가 되어 떠돈다는 이야기였다.
중이 머리를 기르고 옷을 바꿔 입는 속내는 여자와의 관계가 주로
많았다. 법랑도 그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소문이었다. 여대생에
서 이혼녀로, 심지어는 비구니를 꿰찼다는 흉칙스럽고 알 수 없는 소
문이 어지럽게 나돌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날속한이' 법랑이 감방으로 날 찾아온 사건이 벌어
졌다.
"이보게 법랑, 여자의 속살이 그렇게도 부드럽던가?"
나는 그때 왜 철딱서니 없이 감춰주고 다독여줘야 할 그 문제를 들
춰내 들이받겠다고 이마부터 들이댄 부끄러운 일을 저질렀는지 도시
이해가 안 갔다.
"지랄 마라, 넌 모른다."
"모르겠지, 내가 속살 부드러운 그 맛을 알았더라면 감방에 이렇게
처박히지도 않았을 테니깐."
"녀석은…, 벽돌암에서 뭘 좀 깨달았나 했더니…?"
"그런 건 깨달을 거 없어."
"내 갈길 간 것 뿐이야."
"내 갈길?"
"머리를 잘 못 깎았다, 그래서 다시 기른 거야."
"핑계가 좋아 사돈 네 집에 간 건 아니고?"
"그렇게 생각한다면 별 수 없는 일이다만…."
그는 굳게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런데 나는 그가 여자문제로 산문을 내려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 뒤에 알았다.

'긴급조치 9호'로 뒤집어씌워져 살고 있는 감방을 법랑이 몇 번 더
찾아오고, 내가 그곳을 나왔을 때 '그리스도'가 되어 있어야할 노장님
은 십자가에 못박이지도 않고 아주 풍요로운 환경에서 저만큼 활활
걸음으로 앞서가고 있었다.
그것은 '빠스락' 처세의 절묘함인 듯 싶었다. 애초 젊은이들의 신행
모임이었던 단체는 이름이 바뀌어 있었고, 거기 모인 사람들도 예전
의 그 눈빛 초롱거린 젊은이들이 아니었다.
시국이 어수선해서였을까. 노장님의 사자후도 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텔레비전에 나와서까지 뽕나무를 가리키면서 뽕나무라고 하
는 건지, 느티나무라고 하는 건지 도시 분명치가 않았다. 그렇다고 내
놓고 '유신'을 찬양한 것은 아니었지만, 반대로 이야기를 빙빙 돌려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자는 그런 논조도 아니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노장님은 집회에서 전에 없이 열변을 토했었는
데 어찌 보면 꼭 접신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열변으로 절대적인
가치를 주장하는 것을 보면, 그 주장하는 강도만큼 비현실적이고 맹
목적인 데 떨어져 있었다. 이제 이 시국이 저 어른에게 정토(淨土) 나
부랭이나 외치고 있도록 외나무다리 위에 올려놓았을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처음에는 노장님을 위로하는 입장에 서있었다.
그런데 시국이 노장님을 그렇게 외치도록 만든 것은 아니었다. 노장
님은 그런 외침 속에 그토록 열망해왔던 패러다이스의 열쇠가 있음을
발견한 것 같았고, 그래서 그 패러다이스는 자기만이 아는 것이며 자
기를 통해야만 그곳에 도달할 수 있다고 외쳐대기 시작한 것 같았다.
물론 그것은 타의일 수도 있었다. 참회 없는 역사의 아픔에 종교적
행위를 내세워 종속적 합리화를 꾀하는 타협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더더욱 알 수 없는 사실은 그런 아픈 시국의 그늘에서도 놀랍게 새로
운 부가 창출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문제는 돈이었다. 돈 앞에 서면 사람들이 꼬인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상기온이 '원 형 이 정'의 기본질서를 몰아내고 자리를 잡아가기 시
작했다.
억눌린 민중들은 아무 감동 없이 둥둥둥, 쳐대는 빈 북소리에도 꾸
역꾸역 몰려들었다. 나는 거기서 노장님이 상처받고 신음하는 시국에
종교를 들이대 합리화하려는 교활함을 보았다.
종교가 이래도 되는가. 그것은 참을 수 없는 위선이었고 배덕의 쓰
라림이었다. 바로 그 점이 노장 곁에 내 발목을 묶어놓지 못하게 했
던 점이었다.
나는 옷을 벗었다. 그리고 노장 곁을 떠났다. 노장님과 격차가 너무
깊이 벌어져버렸고, 벌어진 그 사이를 '빠스락 논리'로 새로워진 사
람들이 더 잘 메워주고 있었다.

한데 뜻밖의 사건이 터졌다. 그러리라 예고는 되어 있었지만 그처럼
난데없이 또 한바탕의 회오리바람으로 만세창성을 부르짖던 '유신'의
주역들이 서로 심장을 겨눈 총질로 스스로를 파괴해버렸다. 그런데
이 또 무슨 변괴인가. 이번에는 더 무자비한 자들이 몽당 빗자루로
사바세계를 싹 쓸고 나섰다.
치고 밟는 속에서도 구색은 갖추고 장단은 맞아야 했을까? 몽당 빗
자루의 무리들에게도 눈가리개는 필요했을지 몰랐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리 '대칭'과 '변형'의 논리가 뛰어나고 언어의 조합술이 능란하다
할지라도 노장님이 그들의 눈가리개로 나선 것까지는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좌우지간 내 추측이기를 바라지만, 아마도 그 점은 노장님이 그 즈
음 서울 신도시 요지에 구축을 시작한, 기존 교단에 버금가는 꿈의
패러다이스의 조성자금과 관련이 있을지 몰랐다. 그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테니까.
그러면 이쯤해서 '미국산 자리공'에 관한 이야기를 해도 될 것 같
다.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은 어떤 친구의 이야기에 의하면, 미국산
자리공은 노장이 좋아하는 난(蘭)과는 달리 메마르고 오염 안 된 땅
보다는 오염이 되었더라도 메마르지 않은 땅에서 더 잘 번성한다고
가르쳐주었다. 나는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잘 모른다. 다만, 오염
된 땅의 자리공도 잎이 푸르고 줄기가 번성하면 그 밑에 그늘이 깊고
풍요가 쌓여 일단은 얻을 것이 많다는 사실까지는 부인하지 않았다.
나는 이 자리에서 개혁의 의지로 변화를 갈망하던 노장의의 초심까
지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다만 청초한 몸가짐으로 난처럼 살면서 세
상의 변화에 귀감으로 남아있기를 바랐던 것인데, 노장님은 뜻하지
않게 시국의 아픈 그늘에서 '빠스락'과 '대칭의 논리'로 미국산 자리
공과 같은 번성의 풍요를 누리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난이 사는 메마른 곳보다는 번성한 자리공이 사는 풍
요 속에 논공을 들먹이는 자들이 많다는 점이다. 불행하게도 노장님
의 세수에 끝이 보이기 시작하자 그들은 제각기 제몫의 숟가락을 들
고 노장님 밥그릇 주변으로 모여들어, 노장님의 삶을 허무한 거품으
로 몰아가고 있었다.
노장님의 초심에서 되돌아보면 참으로 가슴 아프고 민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자신의 패러다이스 행복 속에서 죽지 않고 영원히
살자고 설파해왔던 노장님에게는 죽음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슬프
고 가슴 아픈 일이겠는가.

내가 노장님께 인사를 드리려고 찾아간 것이 그 무렵이었다. 결자해
지라는 말이 있던가. 노장님을 만나려 했던 것은 인간은 죽음 앞에서
공평해진다는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번 아버지는 영원
히 아버지'이듯이 노장님과 숙세에 맺어진 인연을 타계이전에 한번쯤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날, 나는 참 운이 좋았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매
우 우연이긴 했지만 내가 노장님을 찾아갔던 날, 멀리 덴마크로부터
노장님을 진찰하려고 날아온 의사가 막 도착해 있었다.
그때, 나는 의사의 일행에 섞여 노장님을 만났었는데, 공교롭게 의사
의 일행에 끼어 든 바람에 노장님을 만나려면 제법 까다로운 '절차'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 '절차'는 건강을 표면에 내세워 노장님과의 접근을 막고, 장차 노
장님의 밥그릇에 숟가락을 대겠다는 무리들의 흉계였다. 그런데 나는
그 날 의사들의 일행에 끼어 들었으므로 그런 무리들의 제재를 받지
않고 노장님이 기다리는 거실로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이다.
일행이 거실 안으로 들어섰을 때, 노장님은 간병인의 부축을 받고
미리 거실로 나와 소파에 파묻히듯 앉아 있었다.
나는 사람들 사이로 노장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노장님이 몹시 여
위었다고 생각했다. 공중으로 날아올라 사냥감을 향해 수직으로 내려
꽂히는, 매의 눈망울 같다고 생각했던 날카로운 눈빛도 이제는 움푹
들어가 빛을 잃고 있었고, 꼿꼿했던 허리와 당당했던 어깨의 기세도
동굴처럼 깊고 굽어 보였다.
그날 노장님이 만난 사람은 의사였으므로 나눈 이야기도 자연 노장
님의 질병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래서 나는 노장님의 얼굴을 바라보
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었다.
의사와 이야기를 나누던 노장님의 매마른 시선이 잠시 사람들 틈에
섞여 숨을 죽이고 있는 나의 모습을 훑고 지나갔다. 노장님은 그때
무슨 말을 하려다가, 말을 꺼내는 그것까지가 힘에 겨운 듯 눈빛으로
나를 한번 쓸어보고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나는 그때 고개를 숙여 답
례를 해 보였던가….
의사와의 이야기가 끝나고, 노장님은 다시 주변의 무리들에게 안기
다시피 침실로 들어가는 바람에 나는 사람들의 제지로 더는 어쩌지
못하고 그냥 거실을 나왔다.
거실에서 나와 이야기를 들어보니 노장님은 이미 노령인데다 불치의
병이 겹쳐 덴마크에서 날아온 의사는, 자기로서도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이튿날, 내가 법랑을 만났던 것은 우리도 그런 어이없는, 숟가락의
무리에 끼어보자는 의도로서가 아니었다. '석(釋)씨 종문의 스승도
한번 스승은 영원한 스승이자 아버지'일 수밖에 없으니, 이번이
이 생에서의 노장님과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전제를 달고 세수를
마치기 전에 한번 찾아가 보는 것이 숙세의 연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지 않겠느냐고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법랑이 '조사관
문'을 뚫으러 남쪽지방으로 내려간 것이 노장님에게는 종적을 감
춘 것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법랑의 태도가 의외였다.
"부질없다."
"부질없다니…? 이 사람 혼자서 떠돌더니 기본까지 놔버렸구먼?"
"기본?"
"집을 나간 궁자(窮子)가 장자아비를 두려워함인가?"
"자네가 그렇게 생각을 한다면 별 수 없는 일이네만…, 그러나 궁자
의 비유는 무엇이 참사랑인가를 보여주기 위함일세. 공적(空寂)한 이
치에 들어가야 참 풍요를 맛볼 수 있다는 것 말이야."
말은 그랬어도 법랑은 끝내 내 권유를 물리치지 못했다.

새순이 돋는 들길을 기웃거리는 햇살이 따뜻했다. 노장의 '토굴'은
마을에서 산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있었다. 누가 이런 크고 잘 지은
전원 저택에 '토굴'이라는 이름을 달았을까. 위아래로 두 동을 기역
자로 배치해 멋을 부려 꾸민 빨강 벽돌의 노장님 처소는 바람조차 숨
을 죽였다.
자잘한 자갈이 깔린 마당 안으로 들어서자 자동차 바퀴 밑에서 성애
를 밟는 소리가 났다. 차에서 내리는 우리 두 사람을 보고 진돗개 한
마리가 컹컹컹, 소리를 내어 짖었다. 하지만 개는 묶여있었으므로 안
심해도 될 것 같았다.
주차장으로 쓰고 있는 마당 한쪽에 차를 세우고 법랑과 나는 천천히
아래채 유리문 앞으로 다가갔다.
차 소리가 났고, 개가 짖고 있었으므로 안으로부터 사람이 나올 법
했는데 유리문 가까이 다가가 서있어도 아무 기척이 없었다.
"계십니까?"
개가 더욱 큰소리로 짖어댔다.
"여보세요?"
안에서는 여전히 기척이 없었다.
법랑이 짖어대는 개에게 볼을 불룩여 눈을 부릅떠 보였다. 개는 비
로소 제 할 일을 만났다는 듯 더욱 요란하게 짖어댔는데, 아래채 현
관 유리문 안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나타난 것은 바로 그때였다.
3십대 초반의 남자였다. 그는 천천히 슬리퍼를 끌고, 참으로 천천히
유리문을 밀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법랑과 나를 멀뚱히 바라보고
서있는 것으로 용건을 묻고 있었다.
"노장님을 뵈려고 찾아왔습니다만…."
여전히 눈알만 멀뚱거렸다. 무슨 연유인지 그는 짖고 있는 개만큼이
나 우리 두 사람을 경계하는 눈빛이 역력해 보였다.
"노장님을 찾아왔다니까요?"
그래도 그는 눈알만 멀뚱거렸다. 순간 목구멍까지 올라온, 묻는 말이
말 같지 않느냐는 격한 말을 꿀꺽 삼키고 목소리만 한 옥타브 올렸
다.
"노장님을 찾아왔다지 않아요?"
"안 계시는데요."
그제서야 그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나 마지못해
대답한 그의 목소리에는 이미 짜증이 묻어있었다. '안 계신다' 그러
면 '안 계시는 거다' 그런 투의 짜증이.
"문병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어디 멀리 가셨습니까?"
그런데 그는 그 말을 무참히 무시해 버렸다. 그리고 이제는 더 대꾸
할 가치조차 없다는 듯, 아주 느린 걸음으로 슬리퍼를 끌고 유리문
안으로 사라져버렸다.
"저런 개새끼!"
체면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 그런 상소리가 나도 모르게 그의 등뒤
에서 튀어나왔다.
"태산이 문턱이구나."
법랑이 내 등뒤에서 중얼거렸다. 내가 다시 유리문 앞으로 다가가
문을 쾅쾅, 두드렸다.
"여보게 흥분하지 말게."
개가 더욱 시끄럽게 짖어댔다.
이번에는 사내가 자취를 감춘 문으로 4십대 중반의 키가 작은 여인
이 고개를 내밀었다. 그 여인 역시 얼굴에 묻어있는 오만과 무표정이
사내보다 더 못하지는 않았다.
"노장님 병원에 가셨어요."
문을 밀고 고개만 빼꼼히 내민 여자는 개 짖는 소리보다도 더 짜증
스럽다는 듯, 그 말만 재빨리 내뱉고 도로 문을 닫으려고 했다. 내가
얼른 유리문을 잡았다.
"언제쯤 오시나요?"
"그건 몰라요. 우리도…."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빨리 사라져줄 것을 요구하는 여자
의 얼굴에 짓눌려 다음 말을 못 찾고 쩔쩔 매고 서있는데 그녀가 다
시 꼬리를 달았다.
"계셔도 만날 수가 없지만…."
그 말은 없어도 될 후렴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왜 그런 후렴을 붙여
야 했을까.
"계셔도 만날 수가 없다뇨?"
"몸이 편찮으셔서 사람 만나는 것 제한했어요."
그 말은 앞으로 이곳에 다시는 얼씬거리지 말라는 쐐기였다.
"아주머니는 누구세요?"
내 목소리가 곱지 않았다. 동시에 여자가 거칠게 문을 닫았다. 그리
고 거실 안으로 사라져버렸다. '닭 쫓던 개꼴'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일
까. 나는 발길을 돌리면서 컹컹, 짖어대는 개를 향해 자갈 한 알을 걷
어찼다. 자갈이 튀어 오르자 개는 더욱 컹컹컹, 맹렬하게 짖어댔다.
나는 또 한번 자갈을 걷어차려고 오른발을 들어올렸다.
"아서…."
법랑이 내 팔을 잡고 자동차를 세워둔 곳으로 몰아세웠다.
"바위다."
법랑이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씨팔!"
비로소 인간에 대한 환멸이 구체적인 색깔로 서서히 밖으로부터 안
으로 밀려들어왔다.
운전석으로 돌아온 나는 숨을 가다듬고 재빨리 노장님 숙소를 자동
차바퀴 뒤로 밀어냈다.
"이렇게 되면 궁자의 비유가 어떻게 되는가? 궁자가 제 발로 장자를
찾아와서 이런가? 하긴 비유품의 장자를 찾아간 궁자의 모습이 오늘
처럼 이렇게 그려졌어야 정상이었겠지…."
인간에 대한 환멸과 자조가 뒤섞여 두서없이 튀어나온 나의 말에 법
랑의 대답은 실로 엉뚱했다.
"내일 또 오면 돼."
"뭐라구?"
"내일 다시 오자구."
"미쳤냐?"
나는 강한 반발로 법랑을 쏘아보았다. 나는 유신의 탱크를 몰았던
자들과, 다시 유신의 잔재들을 쓸어내고 권력을 쟁취한 몽당 빗자루
와 같은 자들까지 종교적 논리로 찬양을 해주고 쌓아올린 노장의 그
풍요로운 밥그릇에 애초 숟가락을 넣을 의도가 아니었다면, 이쯤해서
발길을 끊는 것이 현명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법랑은 달
랐다.
"한번은 만나봐야 할 석씨 집안 괴각이 됐구먼."
그의 결론이 그랬다. 그러나 나는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 그것까지는
알 수가 없었다.

다음 날이었다. 나는 법랑의 요구로, 다시 법랑을 태우고 노장님을
만나러 '토굴'로 떠났다. 이번에는 법랑이 앞장을 섰다.
법랑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노장님이 계신 거실 출입문 앞으로 곧바
로 향했다.
컹컹컹…!
어제 자갈을 앵겨준 것에 대한 분풀이라도 하듯 묶여 있는 개가 까
무러칠 듯 소리를 질러댔다.
거두절미, 법랑이 막 바로 노장님의 거실 유리문을 막 열려고 할 때
였다.
"이보세요?"
아래채에서 어제 그 여인이 황급히 뛰어 올라와 숨을 몰아쉬며 법랑
의 앞을 가로막았다.
"신고도 않고 이렇게 마구 들어가는 법이 어디 있어요?"
여인는 '신고'라는 단어를 썼다. 그 말에는 도전적인 권위도 함께 베
어있었다. 아마 허락이라고 해야할 말을 신고라고 표현한 것 같았는
데 법랑은 여인의 그 말에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것까지는 좋았다.
"내 앞을 가로막는 게 사람인가, 그림잔가?"
나는 웃음이 나와 참을 수가 없었다. 콧구멍이 벌름거렸다. 얼른 손
가락으로 콧구멍을 막았다.
"안돼요. 노장님은 만날 수 없어요."
여자는 완강했다. 아니 필사적이라고 해야 좋을 것 같다.
"사람이 그림잔데 앞을 막아도 허공이로다."
"무례하게 여기가 어디라고 이러세요?"
그 정도의 너스레로는 안 될 것 같았는지 갑자기 법랑이 소리를 꽥,
질렀다.
"저리 못 비키냐!"
그것은 소리가 아니라 할(碣)이었다. 선사들이 가끔 막힌 지혜를 뚫
느라 악! 하고 내지르는…. 그 바람에 여자가 뒤로 주춤 물러섰다. 그
때 내가 앞으로 나섰다.
"제자가 스승님을 뵈려고 먼데서 왔습니다. 아주머님이 뉘신데 이러
십니까?"
그 때 안에서 밖의 소란스러운 소리를 들었음인지 거실 문을 여는
사람이 있었다. 간병인이었다. 며칠 전, 덴마크에서 온 의사의 일행
속에 끼어 노장을 만났을 때의 그 간병인의 시선이 나와 마주쳤다.
"노장님께 옛 제자가 문안, 아니 무릎을 꿇으러 왔다고 전해주십시
오."
내가 법랑을 대신해 부러 여자 들으라고 비꼰 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자 누구시라고 그럴까요?"
"법랑이라고 하십시오."
잠시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안으로 들어간 간병인이 한참 있다가
다시 나와 출입문을 열고 안으로 안내했다.
노장님은 거실로 나와 소파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번 덴
마크의 의사와 함께 왔을 때의 모습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
다. 하지만 얼굴은 하얗게 여위었고, 목은 여전히 가늘었다. 그러나
눈빛만은 맑고 초롱초롱 빛나 보였다.
법랑과 내가 절을 하고 나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우리의
뒤를 따라 들어온 여인이 마치 감시라도 하듯 노장님 곁에 바싹 붙어
앉아 있었다.
"법랑이 무릎을 꿇었습니다."
우리 두 사람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던 노장님이 고갯짓으로 간
병인을 가까이 불렀다. 그리고 가는 목소리로 간병인의 귀에 대고 무
슨 지시를 내렸다. 이윽고 간병인이 노장님의 말을 우리들에게 대신
전했다.
"노장님께서는 누구신지 모르시겠다는군요?"
참으로 예상 밖의 대답이었다. 아니 이럴 수가…, 그런데 법랑이 재
빨리 말을 받았다.
"노장님, 양무제(梁武帝)가 달마대사를 보고 두 번째 물었습니다. 나
와 마주한 그대가 누구십니까? 달마대사가 대답했습니다. 모르겠습니
다. 그러면 노장님은 양자강을 건너시겠습니까? 한강을 건너시겠습니
까? 여기 그대로 남으시겠습니까?"
나는 어리둥절해졌다. 그렇지만 믿을 수 없는 두 가지 사실을 발견
해냈다. 노장님은 우리에게 직접 이야기를 할 수 없을 만큼 발성기관
에 이상이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간병인을 내세워 의사를 대신 전달
하는 점이 그것이었고, 또 하나는 우리를 아예 모른 사람 대하듯 안
면을 거두어드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어떻게 이런 연극이 가능할까. 이게 누구야? 도둑놈도 아니구…, 내
가 두 번째로 노장을 찾아갔을 때 발로 걷어차려고 하던 모습이 머리
속에 떠올랐다.
그때 내가 침묵을 깨고 대신 나섰다.
"저는 법은(法隱)이고, 이쪽은 법랑입니다. 노장님께서 이름을 지어
주신…?"
하지만 나의 그 말은 흘러간 유행가가사 같은 소리가 되어 되돌아왔
다.
노장님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리고 간병인의 귀에 대고 뭐라
고 지시를 내렸다.
간병인이 대답했다.
"누구신지 전혀 모르시겠답니다."
권투에서 'TKO'가 이런 것일까. 노장 곁에 칠증(七證)의 증명사(證
明師)처럼 꼿꼿이 앉아있던 여자가 심사가 뒤틀려 오르는 듯, 눈썹이
일어선 시선으로 우리 두 사람을 쏘아보고 있었다. 바로 그때 법랑이
큰소리로 말을 받았다.
"벽이 있고 문이 있는 것은 공한 이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따로
공한 이치를 만든 자가 없으니 새삼 마주치는 자도 없겠지요. 그렇다
면 주거침입자는 노장님이십니까? 접니까?"
"…………?"
눈을 까막까막 하면서 듣고 있던 노장님이 고개를 창 쪽으로 돌려버
렸다. 법랑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세 번 절하고 거실을 나갔다. 엉
거주춤, 나도 법랑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왔는데, 간병인이 출입문 앞
까지 따라나와 거실 문을 닫으려고 했다.
"혹시 노장님께서 의식이 흐려지지 않았습니까?"
내가 닫으려는 문을 붙잡고 빠른 목소리로 물었다.
"전혀 그런 적은…?"
이것 역시 고도의 '빠스락'일까? 하지만 노장님은 흔히 있는 석씨
종문의 관행에서처럼 우리 두 사람의 물음에 아무런 암시도 내리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참으로 영문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알았습니다. 그럼 어르신, 간호 잘 하십시오."
간병인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돌아서자 법랑은 저만치 마당 가운데로
걸어나가고 있었다. 다시 진돗개가 컹컹컹, 소리를 내어 짓어대기 시
작했다. 나는 개에게 던지려고 작은 돌멩이를 한 개를 집어들었다. 그
리고 뒤를 돌아보았는데 노장님 앞의 증명사 같던 여자가 계단 아래
까지 따라나와 땡땡 부은 얼굴로 쏘아보고 서있었다.

"딱 잡아떼는구만…."
차를 몰고 노장님의 '토굴'을 나오면서 내가 말했다.
"왜 그랬을까?"
법랑은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그의 시선 끝, 마을 어귀
에 송아지 한 마리가 어미 소의 뒤를 부지런히 따라가는 모습이 보였
다.
"산을 내려가지 않았더라면 이런 몰골은 면했겠지?"
그러나 법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네 공부가 깊은가 봐, 달마대사가 어떻고 주거침입이 어쩌고…?"
그래도 그는 창 밖으로 던져진 시선을 떼려하지 않았다.
"그게 쥐가 고양이 밥그릇 깬다는 소린가?"
차가 산비탈을 돌아 아스팔트 큰길로 접어들었다.
"이거 뭐, 아웃사이더도 아니고…, 이봐, 말 좀 해봐. 뱀한테 꼬인 이
야기라도 말야."
뱀이란 법랑에게 여자가 있다면 그 여자를 가리킨 말이었다. 그래도
그는 말이 없었다.
"독사도 제 새끼는 꾀꼬리 같은 법이지, 그래서 속는 게야."
그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옴 바아라 사다 모차목,
모습도 없고 빈 것도 없고 비지 않은 것도 없으니,
이것이 니르바나의 참 모습이라.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노장의 주검을 태운 섶 무더기가 숯불로 변하면서 독경소리도 차츰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 때 법랑이 팔꿈치로 내 어깨를 건드렸다.
"그만 가자."
"사리가 몇과나 나오는가 봐야지."
"그건 술 안 준다."
"발칙스럽게 술 생각을…."
"한 잔 하자, 연화장계로 가시기 전에 노장님 하구."
우리는 다비장을 빠져 나왔다. 차를 몰고 내려오면서 아침에 지나쳤
던 저수지를 내려다보니 오른쪽 수면 가에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들이
군데군데 앉아있다.
낚시꾼들을 고객으로 한 가게는 수원지 위쪽 길가에 낮게 엎드려 있
었다. 나는 가게 앞에 차를 세웠다.
법랑이 먼저 가게 안으로 들어가더니 주전자를 들고 길 가 비치 파
라솔로 나왔다. 김치접시를 들고 뒤따라 나온 가겟집 여주인이 자기
가 직접 집에서 담근 솔잎파리 술이라고 자랑을 길게 늘어놓았다.
술을 따라놓고, 내가 꺼낸 이야기는 지난 날 노장님과의 사이에 있
었던, 그렇고 그런 일들이었다. 이제는 그런 일들을 지워버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두서없이 늘어놓고 있었는데, 법랑은 부지런히 술잔만 들어
올렸다.
술 한 주전자를 다 비우고 나서였다.
"슬프지?"
법랑이 내 눈을 들여다보면서 물었다.
"그래, 슬프다."
대답도 그가 했다. 모노드라마처럼.
"이제 가자."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싱겁긴…."
나는 혼잣소리로 중얼거리며 자라에서 일어났다.
천천히 몰고 내려간 차가 '서 있는 돌'이라는 팻말 앞에 이르렀을
때였다. 웬 승용차들이 줄을 지어 '국제 Arts Festival'이라는 포스터
위의 화살표를 따라 마을로 올라가고 있었다.
"또 무슨 굿판이 난 거냐?"
나는 자동차 범퍼를 그들 뒤로 끼워 넣었다.
사람들이 타고 온 차들이 논둑을 파헤쳐 축대를 쌓다가 놔둔 공터에
주차되어 있었다.
나도 공터에다 차를 세웠다.
"웬 사람들이 이리 북적거리죠?"
손에 삽을 들고 마을에서 내려오는, 밀짚모자를 쓴 노인에게 물었다.
"모르오, 우리는…. 농사철에 일손이 딸려 죽을 판인데 서울사람들이
이래도 되는 건지…."
달갑지 않다는 목소리였다.
"이런 곳에 공연할 무슨 무대나 있나요?"
"무용이래요. 맨바닥에서 옷을 벗고 춤을 춘대나, 뭐 한대나."
좀 엉뚱하다는 생각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노장님의 주검을 불에
태우고, 그리고 낮술을 한잔씩 걸친 우리 두 사람은 따로 할 일이 있
는 것도 아니었다.
법랑과 나는 사람들을 따라 위로 올라갔다. 공연장은 마을 뒤편에
있었다. 농가주택을 붉은 흙으로 덧발라 토담집처럼 꾸민 집 입구에
서 여자아이 둘이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아까 마셨던 술에 적당히 취기가 올라와 있었는데 그만 술기운을 확
걷어가 버린 것은 무대의 황당함이었다. 특별히 용도가 있어서 세운
것 같지도 않은 솟대 사이로 드러난 공연장은 무용을 공연하는 공연
장으로는 연상되지는 않았다. 산으로 연결된 가파른 언덕을 중장비로
파내 마당처럼 둥글게 돋운 흙바닥이 무대였고, 이를테면 언덕의 계
단식 비탈이 객석이었다. 객석에 의자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무대에
조명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공연은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 노천의 맨 흙바닥 무대에서, 체구가
크고 나이가 든 서양인 여자가 하얀 가운을 입고 비가 내려 미끄러운
진흙바닥을 맨발로 이기면서 음악에 맞춰 몸을 휘저어대고 있었다.
관객은 승용차를 타고 온 도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마을에서 올
라온 아이들도 가끔 눈에 띄었다. 나는 이와 같은 '패스티벌'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으므로 신기하다는 생각보다는 괴이쩍다는 생각이 앞
섰다.
그 점은 법랑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법랑은 나의
그 같은 예상을 여지없이 깨버렸다.
"이것이 무슨 소식인고?"
맹렬히 불에 타던 노장의 주검을 바라보고 있던 때처럼 그는 앞으로
배를 쑥 내밀고, 입 꼬리에 미소를 문 시선으로 서양 무희를 바라보
고 서있었다.
눈이 유별나게 파랗고 퀭해 보인 서양 무희의 공연이 끝나자 법랑은
입을 좍 찢으면서 말했다.
"그것 참 재밌다."
이번에는 하얀 드레스를 입은 여인들이 갈매기 떼처럼 너울너울 춤
을 추며 모여들었다가 흩어지곤 하는 무대가 이어졌다.
"노장 씻김굿 한다."
"씻김굿?"
"묻지 말아, 아무나 하면 어때."
"취했군?"
"지랄 마, 노장은 아직 탈을 못 벗었다. 잘 봐, 저기 같이 춤을 추고
있는지…?"
"돌아가신 노장님 그만 욕 봬라."
노장님은 이 세상에서의 모습을 불에 태워 없앴다. 모습이 없는 노
장님이 드레스 자락으로 나타나 훨훨 춤을 춘다면, 그 춤은 누구를
위한 춤일까.
다시 무대가 끝나고, 이번에는 특별히 조용해달라는 사회자의 아나
운스먼트와 함께 여자 한 사람이 객석 앞에 나와 서있었다.
이윽고 여자가 음악에 맞춰 몸을 조용히 움직였다. 죽어있는 듯, 그
러다가 살아나서 매우 천천히 앞으로 몇 걸음 걸어 나가더니 걸치고
있던 옷을 하나씩 벗어 던지고는 알몸이 되었다. 객석 한쪽에서 킥킥,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알몸이 된 여자는 객석을 등지고 진흙바닥의 무대를 한쪽으로 비껴
천천히, 정말 천천히 걸어서 지나가고 있었다. 야외무대는 갑자기 이
상한 침묵에 휩싸여버렸다.
저것도 춤인가? 정말 조용했다.
그런데 참으로 괴상한 춤은 그 다음으로 이어졌다. 적극적으로 토속
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 그러나 슬프고 우울한 삶의 모습을 연상시
키는 복장을 한 여인이 뜻밖에도 해골을 안고 무대 위로 올라와 서있
었다. 음악이 흐르자 여인은 두 발을 '앞으로 조금씩 전진하듯 하면
서 온몸으로 작은 원을 그리듯, 왼손으로 해골을 가슴팍에 소중히 안
고서 오른손은 영혼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듯'움직이며 앞으로 나아
갔다.
여인은 애절해 보였고, 해골은 우리에게 엄숙함을 요구했다. 마치 우
리들의 삶과 죽음을 동시에 보여주려는 듯, 여인의 몸짓은 삶을 갈망
하는 것도 같았고, 삶을 체념한 것도 같았다. 가슴에 안고 있는 해골
이 그것을 강하게 설명해주고 있었다.
내 눈에는 여인이 슬프게도 보였고, 기쁘게도 보였다. 여인은 저 춤
으로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가? 그러나 나는 그 여인의 모습에서 기
쁨보다는 슬픔을 더 많이 발견해내고 있었다.
그때였다. 객석 맨 흙바닥에 다리를 꼬고 앉아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법랑이 손가락으로 공연장을 가리키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돌이 허공에 뜨는구나."
사람들이 법랑을 돌아보았다.
"우치한 사람 앞에서는 꿈 이야기를 말라. 하늘에는 구름이요, 땅에
는 그림자로다. 구름이 흩어지고 그림자가 지워지면 본래의 빛이 온
누리를 비추리니, 말하라, 말하라, 그것이 무엇인가."
법랑은 천천히 객석을 내려와 노천 공연장을 가로질러 아래로 내려
갔다. 불현듯 법랑의 행동이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 머리 속에는 공연장 위로 다비가 끝나 한 움큼 재로 남아버린 노
장님의 모습이 환영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하늘에는 나뭇잎을 흔들고 올라간 바람이 잿빛구름을 쓸어가고 있었
다.  <끝>                    


신지견의 인생론
임헌영 (문학평론가)

삶의 허망함을 산뜻하게 엮어낸 신지견의 '다비장(茶毘場) 가는 길'
은 작가의 깐깐하고 단단한 솜씨가 만만찮다. 불교소설 대개가 그렇
듯이 입산, 절망, 하산, 다시 절망 속에서 세속에서 진리 찾기라는 사
건 전개가 공식처럼 적용되고 있는데 따지고 보면 별달리 달리 어떻
게 해볼 재간도 없을 터이다. 화자인 '나'(법은)와 법랑은 노장의 제자
였으나 법랑은 일찌감치 스승을 떠났고, 나는 명망이 높아 가는 스승
대신 징역을 산 뒤 하산해 버린다. 대체 노장의 명성이란 뭘까. 유신
체제 불복종 이미지를 부각시켜 명성을 획득한 그는 이내 "텔레비전
에 나와서까지 뽕나무를 가리키면서 뽕나무라고 하는 건지, 느티나무
라고 하는 건지 도시 분명치" 않게 둘러대면서 더욱 유명해지더니 종
내에는 "아픈 시국의 그늘에서도 놀랍게 새로운 부가 창출", 세속적
인 부귀를 누리는 타락한 승려로 비춰진다. 소설은 비록 제자들에게
실망을 안겨준 스승일망정 그 다비에는 참여하고야마는, 그래서 신앙
도 삶도 허망함을 재확인하는 절차를 꼬박꼬박 다 밟도록 장치한다.
다비장에서 내려오던 중 서양여자가 맨바닥에다 옷을 벗고 춤을 추는
장면 앞에서 "노장 씻김굿 한다"는 법랑의 말은 타락한 신심을 향한
저주 어린 자조에 다름 아닌데, 바로 작가의 말이기도 하다. 결국 그
렇게 타서 사라질 인생인 것을….
<한국소설가협회 발행 '월간 한국소설' 2002년 9월호 이달의 소설평
에서>

     
  언제나 좋은 이웃이고 싶습니다.  불광 08·10·28 7605
  [순례] 가평 현등사  석주 08·10·26 7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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