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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좋은 이웃이고 싶습니다.
 불광  | 2008·10·28 12:13 | HIT : 7,605 | VOTE : 3,1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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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좋은 이웃이고 싶습니다.
불광 2003년 3월.

모든 이들이 본래 부처이고, 부처로 회복되어야 할 사람들이며, 부처님들과 함께 있는 사람들입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 사람의 수행력은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감추어지지 않는다고 했던가. 불교운동가로 더 잘 알려져 있는 그의 소식을 선재마을 홈페이지에서 접하고 수희찬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의술을 펼치면서 마음공부에 전념하며 보살행을 실천하고 있는 그의 삶은 부처님이 바라시는 참된 불자상이 아닌가.

부처님의 하루

󰡒생활 속에서 부딪치는 일에 대해 순간순간 일어나는 마음을 부처님 마음으로 되돌리는 게 수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수행이 무르익기 전까지는 일정 시간 수행에 전력해야 겠지요. 재가자들은 하루에 최소한 여덟 시간은 생업에 종사할 수밖에 없으니, 나머지 시간을 법답게 잘 써야 합니다. 하루를 살더라도 부처님처럼 살자고 도반들과 다짐하곤 합니다.󰡓

그는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예불로 하루를 열고, 참선 수행, 오전 9시에 한의원 문 열고 오후 7시까지 진료(업무 중에도 손님이 없을 때는 한의원에 마련된 법당에 들러 마음공부), 오후 7시 30분에 저녁예불, 정기법회나 경전공부, 참선공부 모임이 있는 날은 도반들과 함께 공부하고 있다.(불교교양대학 강의와 신행단체 지도, 하이텔 동호회 홈페이지에 벽암록 강의, 주간불교에 선시 연재 등 인연 닿는 대로 법을 전하고 있다.)

문득 선재마을 홈페이지에 올린 그의 글이 떠오른다. 쌍윳따 니까야의 󰡐부처님의 하루󰡑를 인용, 부처님께서는 대자비삼매의 시간을 언제나 가지셨음을 강조하면서 자신과 이웃을 사랑으로 살펴보는 시간을 꼭 가질 것을 당부하고 있는 그의 말이 인상적이었는데, 언행일치된 그의 삶이 마음 깊이다.(그는 사람들이 몸과 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나길 대의왕이신 부처님전에 매일 매일 축원하고 있다.)

설중매화는 너무 외롭지 않냐?

󰡒고등학교 2학년 때 청담 스님이 저희 학교에 특강(교양강좌)을 오셨습니다. 그 때 강의를 들으면서 내 사유방식이 불교적이라는 것을 알았지요. 그 뒤로 청담 스님을 자주 찾아뵈었고, 불교서적을 섭렵하면서 스펀지에 물 스며들 듯 불교적 세계관에 푹 빠져 살았습니다.󰡓

대학생불교연합회 활동(72년~74년)에 열렬했던 것은 자연스런 귀결, 서울대불교학생회 지도법사였던 광덕 스님과 월간 불광과의 인연도 그 무렵의 일이었다.

󰡒당시(72학번) 반유신 데모의 참여 열기가 대단하고 민족운동이 사회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었는데, 광덕 스님께서는 불광 창간호에서 밝히신 대로 󰡐순수불교󰡑에 굳건한 바탕을 두어야 민족운동도 참될 수 있다고 강조하셨지요.󰡓

그는 세월이 흐를수록 어둠은 밝음으로써 물리치고, 수행 전법으로써 세상을 밝히라는 광덕 스님의 사상이 더욱 절절하게 다가온다며, 불교를 만나고 여러 큰스님을 만나 지도받을 수 있었으니 운이 좋았다고 회고한다.

󰡒경봉 스님께 󰡐눈 속에 핀 매화가 향기가 진하다지요?󰡑라며 설중매화를 써달라고 부탁드렸는데, 웃으시며 󰡐너무 춥고 외롭지 않겠느냐?󰡑고 하시는 스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사람들과 더불어 나와 남이 이로운 길을 걸어야겠다󰡑는 방향 전환을 하게 되었지요.󰡓

그의 생각은 군대에 갔다 온 뒤 더욱 확고해졌다. 불교 공부하면서 불교적으로 참사람답게 살아야겠다는 각오가 새록새록해졌고, 마음공부와 생업을 같이 할 수 있는 길을 찾다가 경희대 한의대에 입학하였다. 한편 80년대 초반 결성된 민중불교연합 활동에 적극 참여, 교단의 민주화와 아울러 대사회적으로 더불어 함께 사는 길을 고민하면서 불교적 삶을 구현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도 불교운동가로서의 그를 기억하고, 당시 민불련 법당에 모셨던 부처님을 지금 선재마을 법당에 모시게 된 것도 다 그런 인연 덕분이다.


선재마을, 부처님들의 공동체

80년대 중반 졸업과 동시에 개업한 종로 2가 󰡐김경현한의원󰡑은 늘 사람들로 북적였다. 불국토를 일구고자 서원 세운 이들은 다 모여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염원이 모여 87년도엔 길훈건설의 박길훈 사장이 강서구 염창동에 아파트 상가를 무상 임대해주어 선재마을 법당을 개원하게 되었다. 사부대중이 하나되어 만나는 모든 이들을 부처님으로 바라보고 서로가 부처님이 되는 마을공동체, 실천불교를 구현하는 도량으로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화엄경 입법계품에 보면, 선재(善財)동자가 만나는 밑바닥 인생에서부터 성공한 장자에 이르기까지 전부가 스승이요, 부처님입니다. 또한 선재동자를 가졌을 때 그 아이의 공덕으로 어머니가 마음이 푸근해지고, 보시도 하고, 갑자기 그 집에 재산이 늘어났다고 합니다. 내면적으로는 모두가 부처님, 사회적으로는 선재동자 한 사람의 출현으로 이웃까지 넉넉해진 것처럼 모두가 푸근해질 수 있는 구도자들의 모임이 되자는 뜻에서 선재마을이라고 했지요.󰡓

불교운동가들과 서울대 의대 불교학생회가 주축이 된 선재마을은 90년도까지는 활발했는데 한동안 정체기를 맞았다. 그가 92년도에 마산불교한방병원 병원장으로 내려갔다가 96년도에 서울로 다시 올라오면서 삼성동에 선재한의원을 열고, 이듬해 한의원 건물 3층에 선재마을을 새롭게 개원, 경전공부하고 수행하는 부처님들의 공동체로 거듭나게 되었다.
한편 선재마을은 99년 5월 창립하여 노숙자, 빈민, 교계 노인복지시설,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지속적인 무료 진료로 교계 내외의 칭송을 받고 있는 선재마을의료회의 모태라 할 수 있다.(학교 다닐 때도 의료봉사활동을 했는데, IMF 사태로 온 국가가 어려운 상황에서 고통을 분담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선후배 의사들을 부추기고, 진료 장소(봉은사)를 얻는 등 선재마을의료회가 태동하고 기반을 닦기까지 그의 역할이 매우 컸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최근에 선재마을은 소리 소문 없이 몽골불교지원사업을 주도, 여러 사부대중의 협조로 몽골불교미술대학(이 곳을 중심으로 몽골불교가 일어나고 있다.)에 장학금도 보내주고, 이 대학 학생들에게 불상조각 기술을 전수(김영철 불교조각연구소 소장)해주고, 몽골불교계가 성전으로 채택한 『보리도차제론』을 현대몽골어로 번역 출판해주고, 몽골 스님 세 분을 모셔와 한국어 교육과 한국불교전통을 보여주는(지난 해 10월~12월) 등 한국과 몽골의 실질적인 교류에 기여하고 있다.

󰡒지난 1월 보리도차제론 출판기념회는 몽골 대통령을 위시해서 온 국민의 축제였습니다. 몽골은 사회주의 국가시절 70년 동안 간단사 한 곳을 제외하고는 불교의 흔적을 찾기 힘들었는데, 개방한 지 몇 해 되지 않아 불교가 사회문화 전반을 주도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이랄까, 만감이 교차했지요.󰡓

출판기념회는 영하 20도가 넘는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수천명의 사람들이 밖에서 행사를 지켜보는 대성황을 이루었다. 그는 그날 행사를 지켜보면서 몽골불교의 뿌리 깊은 전통과 아울러 광덕 스님께서 주창하신 순수불교의 참뜻을 새삼 깨닫게 되었단다.

󰡒오늘을 사는 선재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변하여서 부처님의 일을 하고, 모든 부처님이 칭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실 외면적인 모습은 똑같습니다. 순간순간 부닥치는 생활의 원칙이 부처님의 지혜냐, 업에 끄달려 사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이지요. 당연하다고 마음속에 일어나는 업을 알아차리고 부처님 마음으로 되돌리는 것이 수행입니다.
당장 여기서 마음을 어떻게 쓸 것인가 고민하고, 연기의 이치를 생활화하고, 부처님이 보시기에 좋은 일들에 주력하며, 주위가 풍요로울 수 있게 노력하는 도반들이 다 선재라고 생각합니다.󰡓

하루를 살아도 부처로 살고 선재로 살아야 한다는 그의 말이 마음을 울렸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함께 법당을 마련하고 경전공부하고, 수행하며 부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의 향기, 그 수행력이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개인적으로도 참 고마웠다. 부처님 일 한답시고, 정작 수행에는 소홀했었는데…진정한 부처님의 일꾼(如來使)으로 거듭나길 다짐한다. 생동하는 새봄, 찬란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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