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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단법석은 원통 김광수선생의 법석(法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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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와 성취
 원통  | 2008·11·17 16:24 | HIT : 8,204 | VOTE : 720 |

기도와 성취

1.
사실 나는 기도라는 수행법을 그리 열심히 해 온 사람은 아니다. 그런 내가 기도 에 관해서 뭘 쓴다는 건 그리 자격이 안 될 수도 있겠다. 혹은 그런 내가 기도에 대해서 뭔가 하는 말이 별 영양가가 없을 수도 있겠다.  그래도 한번 써 보겠다.

기도라는 건, 이 세상에서, 즉, 생멸하는 有爲적 세상에서, 有漏적 세상에서, 뭔가 세상의 어떤 일이 간절히 이루어 지기를 일구월심으로 바라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눈치 빠르신 분들은 이미 눈치 챘겠지만, 애시당초, 유위적 세상이라는 것이, 유루적 세상이라는 것이 허망한 것이라는 일체 개공(一切皆空)의 입장에서는, 혹은 “아공, 법공이며, 과거 미래 현재도 없는” 진리의 당체인 세상에서는, 즉, 眞諦의 입장에서는 “기도 하고 말 일도 없다”, 견성하는 입장에서는 “오로지 기도할 일이란 수행해서 빨리 깨달을 일 뿐”일 것이다.

또, 유위법의 입장에서 본다면,
인간이란 어차피 유위법의, 생멸법의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니까, 그리고 수많은 중생들도 결국 유위법의 생멸계에 살고 있는 것이니까,  그걸 아주 무시한다는 것도 반쪽만의 깨달음이 될 것이다.
진여법과 생멸법이 (진제와 속제가) 동전의 앞뒷면이라면 앞면만 가지고 동전이 성립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유위적 세상에서 어떤 바램이 없을 수 없는데, 고상하신 분들에게는 그것이 보살의 원이 될 것이다. 즉, 일체 중생의 고통을 구원하고, 복락을 주는 일, 그리고 아직 보살이 못되신 수행자분들이 발원할 일이란 수행을 잘 해서 깨달음을 잘 얻는 일이 될 것이다.
그래소 우리가 해야할 기도란 바로 이런 (매일 지루하게 읽고 듣는) 발원문 내용에 다름이 아니다.
기도가 뭐, 다 그렇고 그런 것인데, 더 이상의 자질구레한 속인들의 기도에 대해서는 더 이상 논할 바가 없다. 그럴 만한 가치가 없다는 야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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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런데, 사람들은 왜 절에 가는가?  기도하고 불공하러 절에 간다. 그러니, 속인들이 절에 가서 기도하고 불공하는 것을 가치 없다든지, 관심 없다든지 해 버리면, 사실 절을 찾는 사람도, 불전 앞에 돈을 놓는 사람도 없어진다. 결국 이 땅의 불교도 없어질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소박한 속인들의 이런 세속적 바램”을 무시하거나 부정해서는 부처님마저도 어디서 밥한술 빌어자실 곳이 없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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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 자신 세간사의 수많은 자질구레한, 혹은 무가치한 일들에 허덕이면서, 그것들에 매여 살면서, 그런 것들을 “가치 없는 일”로 돌려 버린다면 세간사를 살아갈 수도 없겠거니와, 세간사를 살아갈 자격도 없을 것이다. (또한 속진을 버려버리고는 보살도 어디 근거할 데가 없지 않은가).
나는 무가치한 세간사를 합리화하거나 변명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러한 세간사들이 우리를 지배하고, 움직이는 원리들이 되어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런 가운데서 사람들이 희망하는 일, 바라는 일, 되어지길 원하는 일이 왜 없겠으며, 따라서 그것을 위해 기도하는 일도 충분히 근거를 가질 수 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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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기도를 열심히 하면 천지신명이 나를 돕고, 산천초목이, 혹은 관셈보살이 나를 도와서 일을 이루게 해 준다?
적어도 내가 배운 자력신앙이란 데는 “그런 건 없다”고 한다. 남이 나를 와서 도와주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걸 다른 어떤 외부적인 힘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 힘에 의탁하는 것을 타력신앙이라고 한다는 데, 적어도 불교에서는 타력보다는 자력을 믿는다는 데 불교의 장점, 혹은 우수한 점이 있다고들 한다.
그래서 나는 “타력보다는 자력이 좋은 것이구나,” 이렇게 배웠고, 그렇게 들어서 알고 있다.

그래서, 그 내용으로 말하자면,
관셈보살도 내 속에 있는 관셈보살이요, 내가 주인이 되어 친지신명을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래도, 외부의 어떤 힘이나 유정물이 따로 있느냐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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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가지 분명한 것은, 스스로의 노력을 강조하지 않고, (계정혜 3학을 각근히 지켜나가지 않고), 이러저렇게 기도하면 기도가 이루어 진다든지, 혹은 초인간적인 현상이나 결과 그런 것들을 강조하고 선전한다면 그것은 올바른 가르침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옳지 않은 가르침에 경도되는 사람들이 계속 생기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아마도 그것이 인간이란 종류의 중생이 그만큼 어리석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가지 이와 관련된 것은,
수많은 타력적 신앙행태와는 달리, 무엇보다도 자력적 수행을 강조한 것이 바로 선불교이다. 자기가 세상의 중심이고, 자기 마음이 모든 것을 만들었다고 하고, 어디에 가든지 네가 주인이다(隨處作主)고 강조하고,  한마음, 참마음 찾기 등을 가장 강조하는  것이 바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강력한 종파인 禪宗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나라의 수많은 불자님들은  한마음을 찾기 보다는 기도해서 남이 복을 주시기만을 기원하시는 분들이 더 많은 것이며, 왜 그 수많은 조계종 선사님들서는 많은 불자들에게 참선을 하거나 교리를 공부하기 보다는 그저 기도나 열심히 하라고 하시는 걸까. 우리나라에는 왜 이렇게 기도성취 도량이 많은 것일까? 이것이 신도님 잘못일까, 아니면 스님들께서 그렇게 유도하시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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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이렇게 빠딱한 생각만 하는 걸까.
아니 그 보다는 부처님께 빌어서 기도가 성취되지 않는다면, 혹은 기도성취 도량이 지금보다 적어지거나, 혹은 기돗빨이 잘 먹는 도량이 별로 없어서 그 많은 신도님들, 보살님들이 다 기독교로 가고 목사님께로 가면 어쩌겠나?
그렇게 되면 안 되겠지?




     
  퍼옴: 무아냐, 마음이냐.  원통 08·12·02 2876
  때로는 싯적 표현이 더욱.  원통 08·11·17 2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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