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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단법석은 원통 김광수선생의 법석(法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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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문
 원통  | 2015·06·21 21:35 | HIT : 1,807 | VOTE : 348 |
불교신문 구독을  끊겠다고 생각햬던 지도 오래 전이다.
차일피일 실행하지 못하고 있지만  역시 불교신문을 보노라면 짜증이 난다.
이런 불교를 왜 하는지. . .왜 불교는 세상의 상식 만도 못한지.
왜 불교가 새상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스님들을 절을 걱정해야 하는지.
내일은 꼭 구독중단 전화를 해야겠다.

나는 심지어 전에 “홧김에 개종”해 버릴까도 생각해 보았다. 농담반 진담반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제 일요일마다 성경책 끼고 교회가고, 목사님 앞에서 맹세를 하고, 진정으로 하나님이 있다고 생각하고 죽으면 천당이나 지옥 간다고 생각하고 그러지는 않겠지만. . . .
한번 현실종교에 실망한 놈이 다른 종교에 나간다고 해서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한번 결혼에 실패한 여자가 무슨 영화를 바라고 다른 남자를 또 찾을텐가

실망은 스님들에 대해서만도 아니다.
신도들도 뭐 그렇고 그렇다.
물론 말은 그렇다, 내가 “신도들에게 희망을 주고 불가를 바로잡을 노력을 해야하지 않겠느냐”고. 그럴 책임이 있지 않느냐고. 좋은 말이다.
그러나 나의 이러한 전반적인 절망감은 그러한 책임감을 무력화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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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러한 별볼일 없는 불교를 나는 왜 그다지도 애써 공부하려고 했던 것인가.
불교가 뭐길래.
혹시 나는 그동안 불교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고, 불교에 지나친 기대를 햇던 것이나 아닐까?

그렇다며 내가 불교로부터 무엇무엇을 배웟는가부터 점검해 보아야겠지?
우선 가장 최근의 일부터 보면,
그래도 나는 (아무리 안 배웠다고 해도, 아무리 불교를 모른다고 해도)
한국에서는 불교를 가장 많이 공부하는 동국대학교를  4년이상 다녔다.
그러면, 내가 동국대학교에서 배운 것은 무엇인가?

요즘  내게 생각되는 것은, 불교학과 들어가기 전과 그 후의 내가, 나의 불교에 대한 인식이나, 지식이나 깨달음이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동국대학교 박사과정 4년동안 배운 게 별로 없다.
그건 내 옆에서 가장 가까이 나를 지켜본 영재나 경현이가 느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동국대학교 공부를 그리 소홀히 한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이 특히 나보다 더 잘 하는 것도 아니다. (적어도 교수들의 수준을 보자면)
어쩌면 동국대학교를 다니면서, 내가 생각했던 불교가 허상이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 신비감이 깨어지고 실망감만 더 늘었다고나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건 동국대학교에 대한 실망감, 불교학에 대한 실망감이 아니고, 불교 그 자체에 대한 실망감이다)

이 부분은 중요하다. 정확히 말해야 한다.
왜냐 이건 나의 개종(改宗)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내가 더 이상 불교학을 공부할 것인가, 내가 더 이상 불제자로 남을 것인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과장 없이, 더 정확히, 솔직히 말하면,
1) 나는 동국대학을 다니면서 그동안 내가 가졌던 불교에 대한 막연한 허상을 많이 지웠다. 2) 그러면서 동시에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나의 생각을 더 확실히 하기도 햇다(역시 내가 평소에 생각했던 것이 맞다고 하는)
달리 표현하면, 아닌 것을 아니게 보게 되었고, “기(yes)”인 것을 “기(yes)”라고 보게 되었다.
물론 이것은 적지 않은 수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얻은 결과물은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이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나는 불교에서의 여러 가지 신비적인 이야기, 과장 그런 것들의 실상을 알았고, 그것들을 제외한 남는 것은 (허상의 옷을 벗고 남는 것은) 그저 상식적인 가르침들, 즉 거짓말 하지 말아라, 열힘히 살아라, 착하게 살아라 그런 것들이었다.
불교는 그저 그런 것이었다.  
그것이 내가 발견한 불교의 발가벗은 모습이었다.

불교는 그저 “중선봉행, 막작제악, 착하게 살아라” 그게 다 였다.
불교 속에는 엄청 신기하고 귀중한 산더미같은 보물(신상환의 표현으로는 신통방통)이 있을 줄 알았는데,
불교를 발가벗겨놓고 보니, (착하게 살아라)  단지 그거였다.
나머지는 다 뻥이었다.
나머지는 다 찬란한 수식어 였고, 찬란한 몸치장이었다.
“그거 배우려고. . . .”
“그건 초등학교에서도 배우는데. . .그건 불교 아니라도 상식인데. . . ”

사실 “착하게 살아라” 그건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소중한 말이다.
그러므로 금보다 귀하게 취급받을 가치가 있다.
그러나, 온갖 경전, 법문, 론서에서 말하는 깨달음, 해탈이 주는 희구감(希求感)은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러면 부처님이 거짓말을 하신 것인가?
사기를 치신 것인가?
나는 부처님은 사기를 치지 않으셨지만 부처님 이후의 불교, 스님 종단은 지금까지 사기를 쳐 왓다고 생각한다.
부처님은 화택(火宅)에서 중생을 구하기 위해서 고구정녕한 거짓말로 (-양의 수레, 개의 수레, 소의 수레라는-) 중생을 구해내고자 하셨지만 =여기서 중생을 구해낸 다는 것은 즉, “착하게 살라”는 것.
그 이후의 스님들은 (그리고 지금까지 현재의 스님들도)  부처님의 사용하신 거짓말만  울궈먹고 있다. 즉, 부처님의 가르침은 “착하게 살라”인데,
스님들은 해탈, 견성, 한소식. . .혹은 죽고나서 극락왕생, 천도재외 예수재. . .이런 것들을 팔아먹고 살아 온 것이다.

여기서 문제는 두가지이다.
1) 불교의 참 가르침은 “착하게 살라”인데, 내가 착하게 살면 되는 것이지, 그것과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는 지금의 불교공부를 더 할 필요가 있겠는가. 수많은 경전, 산스트리트 원전, 논문 그런 것들이 대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착하게 살라는 것을 증명하는 데 무슨 말이 그리 많이 필요하겠는가.
즉, 소위 견성이란 것을 해서 신통방통한 “금나와라 뚝딱”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버렸으니, 더 이상 불교 공부라는 것이 필요없지 않는가  하는 문제와,
2) 둘째는, 스님들이나, 신도님들이나. 부처의 본의는 잃어버리고, 기도나 하고, 깨달음 환상, 견성환상, 극락환상 가지고 장사나 하는 이 집단, 진정한 불교와는 관계없는 이 집단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이다.  

여기에는 뭐 별로 답이라는 것이 없다.
그래서 뭐 어떻게 이야기를 더 전개시킬 수가 없다.
그냥 여기서 끝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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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6. 21
원통 그들이 뻥을 치고 사기를 쳐 왔다는 것은 그들 자신이 전혀 착하게 살고 있지 않고, 또 절이 착함을 가르치는 교실이 아니라는 것을 보아도 자명하다.

15·06·21 21:40  

     
  401 “. . . 주 예수와 함께 하면 어디서나 하늘나라. . . ”  원통 16·08·30 876
  나는 왜 불교가 좋았던가. 그리고 지금은 왜 불교가 싫은가.  원통 15·06·21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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