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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일반 | 질문 | 답변 |
402 우리는 왜 절에 가는가?
 원통  | 2016·08·30 22:12 | HIT : 1,083 | VOTE : 233 |
402  우리는 왜 절에 가는가?

그, 다음으로 쓴 것을 올립니다. (2-a)


이것은 가장 본질적인 물음이다. 우리는 왜 불교를 믿는가. 사람들은 왜 절에 가는가?
이런 질문은 불가(佛家)에서는 가장 흔한 질문이다. 새삼스런 질문이 아니다.
, , . . .
할머니, 절에는 왜 가요?
절에 무엇하러 가요?
절에 가면 뭐가 좋아요?
-------
물론, 이에 대한 답변은 다양할 수 있다.
흔히는 “복 받으러 간다”, 혹은 “절대자에 대한 귀의”, “가피력을 얻으러”
이런 것들을 들 수 있다.
그런걸 기복(祈福)신앙이라고하지,

그러나 기복신앙도 신앙의 중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그대와 나를 포함해서, 또 불교가 기복신앙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좀 배웠다는 사람들은 그렇게 대답하지는 않는다.
그럼 뭐라고 대답하나?
깨닫기 위해서 가는거다,.
불교 신앙행위의 목적은 깨닫는 것이다.

나는 인정한다. 나는 그것까지 부정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
(얼마 전까지 현응스님의 깨달음에 관해서 수불스님과 학자들이 론전 벌였다는데, 나는 하나도 읽지 않았다. 그래도 역시 불교의 목적은 깨달음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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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이야기 주제를 “깨달음”이란 것이 집중시킨다.
깨달음이 무엇인가?
그것은 “모르고 있던 것을 확 아는 것”이다 .
그것도 모든(all) 것을.
심지어는 전생(前生)까지도 안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마음 까지도 안다고 한다.
그거 알아서 뭐 할건데?

우선 이른바 그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무엇을 깨닫는다는 것인가?
깨달음의 내용이 무엇인가?

너는 미국을 아는가? -잘 모르지.
너는 너의 자녀의 남자친구를 아는가? 잘 모르지.
너는 그여자의 사생활을 아는가? -잘 모르지.
너는 네 마음을 아는가? - 잘 모르지.
너는 네 과거를 다 기억하는가? - 잘 모르지.
너는 네 성격을 잘 아는가? - 잘 모르지.
너자신 성격도 잘 모르는데, 다른 사람의 성격을 아는가?  모르지.
다른 사람의 가치관을 아는가? 잘 모르지.
다른 사람이 행복한지 아닌지 잘 아는가? 잘 모르지. . .
그럼 뭘 아는가?  아는게 뭔가?

아는게 뭔가? 이것은 가장 불교적인 질문이고, 가장 철학적인 질문이다.
(단지 모를 뿐!  그것도 불교의 큰 가르침이다.
소크라테스도 그렇게 말했다. -성인들이 다 말했다.)

그런데, 그 질문에 대해서 일정한 답은 아직 없다. 정답이 없다.
그런데도 깨달음이 뭔지를 알아?

해가 뜨고 해가 지는 것은 안디고 치자 (뭐 그것도 아주 조금만 알지만. . .)
그러나, 아는 것 중에서 가장 고도의 “앎”인 “깨달음”을 알아?
“죽고 나서”를 알아? 다른 사람의 사후(死後)도 알아?
(사기꾼이나 선무당이 들어서기 딱 알맛다)
또, 깨달으면 생사를 초탈한다는데, 그거 깨달으면 안 죽나 ??

그러니까, 우리는 너무도 모르는 것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어째서,
“깨달음이란 이런 것이다”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당연히 아는 듯이 생각하는가?

그런데, 깨달음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저 자기가 전해들은 것, 자기가 읽은 것으로 “그런것”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러니까, 깨달음이란 것은 사람 사람의 생각속에서 있는 것이고,
그 깨달음은 “객관적인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

아, 표현이 좀 지나쳤는데,
미국에 대한 생각이 다 다르다고 해서 미국이라는 실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불교의 어떤 이론에서는 <그렇기 때문에 미국이라는 실체는 없다>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미국이라는 실체가 없다면, 그야물론 깨달음이라는 실체도 없다고 보아야 마땅하다. 나는 그렇게까지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 대한 어떤 정언(定言) 판단도 옳다는 보장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은, 그건 내 주장이다. 그리고 정통적인 불교 교리의 주장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에는 상당한 정도로 불가지론(不可知論)적인 입장이 있다)

미국에 대해서도 그러한데, 하물며, “깨달음”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미국에는 가본 사람도 있고, 사진도 있고 경험담도 조금은 있다. 살아본 사람도 조금은 있다. 누구는 Alabama를 미국이라고 하지만, Florida는 거기와 아주 다르다.
물론, 이것은 코끼리의 비유로 유명한 것이다.
코끼리가 기둥 같은거냐, 털이채 같은 거냐, 바람벽 같은 거냐. . . ,
사람은 자기가 경험한 것 밖에는 알 수 없다는 거다,
또 사람은 자기가 경험한 대로 (또 자기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즉 작기의 업식(業識)이 끌리는 대로) 외부의 대상을 사물을 인식하고 판단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경험도 믿을 바가 못된다. (경험주의자들, 잘들어 !!)
그게 유식(唯識)불교다.

물론, 이 경험에는 간접경험도 들어간다. 얘기 들은 것, 책에서 본 것, 사진에서 본 것도 경험으로 인정받는다.
그런데, 미국도 이렇게 알기 어려운데, 코끼리도 이렇게 알기 어려운데, 늘상 부부싸움하는 마누라의 본심도, 동기도 알기 어려운데 (알고보니 그 사람도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 .)
그런데 하물며, 깨달음이 무엇인지 어찌 알겠는가.

미국을 알려면 가 보거나, 가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조금은 알 수 있다.
그러데 깨달아보지 않았는데, 깨달음이 무엇인지 어찌 아는가?
그러면 깨달은 사람 이야기를 들어보아야 하는데, 깨달은 사람이 없는데  어찌 듣는가?
확실하게 깨달은 분은 부처님 한분은 확실한데, 그저 경전을 보고 간접적으로 상상할 뿐이다. 그것도 아주 거칠게 단편적으로만 나와있고 왜곡도 심하다. (이것을 難題 1이라고 하자)

2-b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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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b

그런데, 문제는 선(禪)불교 쪽으로 가면 이런 문제는 아주 심각하다.
선불교에서는 경전(經典)도 보지 말라고 한다.
그럼 깨달음이 무엇인지 어찌 아는가?
모르는 것을 어떻게 추구하는가?

대형TV를 살려고 해도 그게 뭔지 알아야 큰돈을 내고 살 것 아닌가.,
선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은 원래  부처님의 깨달음과는 많은 거리가  있고,
차이가 있고 왜곡이 있을 수 있다는 거다. (이것을 難題 2라고 하자)

나는 선불교에서 “깨달으면 생사를 해탈한다”,
즉 “죽지 않는다”는 표현이 아주 불만이다.
그건 실제로 내가 그렇게 속았기 때문이다 (순진하기도 하지).
사람이면 다 죽는다. 죽지 않는다고 하면 그게 혹세무민(惑世誣民) 아닌가?

나는 참선해서 깨달으면 진짜로 죽지 않는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나는 참선이, 선종이 위대하다고도 생각했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런 것은 아니었다.
속았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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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문제는 그렇게 해도 그 깨달았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깨달음이 물론 쉽지 않다는 것은 나도 안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사람이 그렇게 오랫동안 수행 했는데도 깨달은 사람이 없다면 그 깨달음이란 것이 과연 있는 것이냐? 이렇게 의심해 볼 수 있지 않은가. (難題 3이다).
그렇다면 설사 그 깨달음이라는 것이 아주 없지는 않다고 해도,
나도 너도 깨닫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거의 확실하다.
깨닫는다는 것이 어느 정도는 현실에서 증명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말이다.

그렇다면 그 깨달음이란 것은 차라리 “가상(요즘 말로 virtual)”이라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인 것이 아닐까.

이 약을 먹으면 병이 낫는다.
한번 먹으면? 아니.
열 번 먹으면? 아니.
평생 먹으면?  아니,
만원어치 먹으면? 아니.
천만원어치 먹으면? 아니.
집 팔아서 먹으면? 아니.
부모 버리고 먹으면? 아니.

그럼 그 약 약효가 없는 거 아니요?
그럼 그 약 먹어서 나은 사람 증명해 보일 수 있소?
딱 한 사람 있소,  (아라한이 많다지만 그건 다 경전상의 이야기일 뿐이다)
하기야 부처님이 깨달았다는 것도 경전 상의 이야기이다.
하기야 깨달은 사람을 본다 한들 그사람이 깨달은 자인줄 알 수는 있겠는가?

참, 이런 엄청난 사기(詐欺)에 그리 오랬동안,
그리 많은 사람들이 걸려들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내 얘기가 아니다.
성철 스님도  <<부처님이 많고 많은 사람들을 속여왔다>>고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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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야기를 좀 정리해 보자.
깨달음이 이렇다는 것, 특히 선가(禪家)에서는 많은 이야기들을 한다.
또 스님들의 법문에서도 많이 이야기 한다.
그분들, 깨달았는가?  아니다.
그런데 그분들 이야기 어떻게 믿나?
또, 그분들마다 이야기가 다르다. 그러니 어떻게 믿나?
그럼 깨달음이 뭔지 어떻게 아나?
모른다.
나는 깨달음이 뭔지 모른다. 나는 견성(見性)이 뭔지 모른다.
깨달음을 이야기하는 스님들, 그분들도 깨달음이 뭔지 모르는 듯하다.
알면 깨달은 사람이지.

그러면, 우리 모두는,
깨달음이 뭔지 모르는 채로, 깨달음을 기다리는. .  .
뭔지도 모르는 대상을 추구하는 그런 자들이란 말인가.

(나는 우선 선사님들의 인가(認可)라는 것은 믿지 않는다.
그분들이 깨달았다는 보장은 없다. 다만 그저 훌륭한 스승님일 뿐이다.
그리고 그분들이 인가를 강조한다면 나는 그분에게는 실망을 한다. 실망하는 건 내 자유다.)

이솝우화가 생각난다.
개구리들이 “하나님을 보내 주세요” 했더니
하나님이 통나무를 보내주어 그것을 믿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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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결론을 내자.
우리는 깨달음이 뭔지 모른다.
깨달음을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내가 보기에는 깨달지 못한 사람인 것 같다.
누가 깨달음이 이러이러하다고 해도 그걸 믿을 수가 없다.
그가 깨닫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기에.

그럼 제일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깨달음이 뭔지도 모르는데,
왜 목숨 걸고 깨달음을 추구하는가.
그건 멍청한 짓이다.
무슨 물건인지도 모르면서 큰돈 내고 그 물건을 산다는 것은 어리석지 않은가.
이게 내 결론이다.

(첨가)
그럼에도 사는 사람이 있다.
그건 그 물건을 파는 사람의 말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믿을만한 사람인지, 그 사람이 과연 진짜로 깨달음을 얻었는지는
그 다음의 문제이다.
나는 이것이 심히 unbelievable 하다는 것이다.
그 파는 사람이 파우스트의 “메피스토펠레스”가 아니냐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겠다.
하기야 선의(善意)의 메피스토도 있겠지.

이것이 깨달음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
그러니, 내가 수불이나, 현응이나,
다른 사람의 글들을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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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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