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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6 무아와 윤회 2
 원통  | 2016·08·30 22:18 | HIT : 800 | VOTE : 142 |
406  무아와 윤회 2

6-a
이제 윤회와 무아의 이야기로 넘어가자.
바로 본론으로 가자.
윤회(輪回)란  죽고나도 계속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고,
무아(無我)란 내가 없다는 듯이다.
그러니, 그게 서로 모순되지 않는가.
이것은 이교도들의 공격이기도 하고, 불자들 내부에서의 의문이기도 하다.
다이 서너가지 있다.

1. 윤회를 부정하는 쪽

윤회란 처음부터 불교사상이 아니었다는 주장이 있다.
이것도 상당한 학문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럴 가능성도 있다.
왜냐. 윤회는 대표적인 브라만교의 사상이다. 아트만 사상의 대표적인 것이다.
브라만 사상에서는 고정적이고 구체적인 실체로서의 아트만이 있기 때문에
윤회는 당연한 것이다.
어쩌면 아트만 사상 이전에 윤회사상이 먼저 있었을 수도 있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윤회사상을 근거로 해서 아트만 사상이 자라왔을 것이다 그정도로 윤회사상은 뿌리가 깊다.

그런데 불교야말로, 가장 정면적으로,
가장 극단적으로 아트만사상, 브라만 사상과 대립했던 사상이다.
그것을 부정하고.
그러니, 부처님께서 윤회를 인정하셨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또 학문적으로도 그런 증거가 많다고 한다. 학문적이니까 믿을만 하겠지.
나 개인적으로도 차라리 그렇게 믿고 싶다.
(교과서에도 이렇게 나온다)

여기서 한가지, 제법 교과서적인 얘기를 한가지 하자면,
부처님은 상견(常見)도 부정하셨고, 단견(斷見)도 부정하셨다.
상견은 자아의 실체가 계속 있다는 것, always 상(常)자다
단견은 무엇인가? 그야물론, 죽으면 끝이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여기서 업보의 문제가 나온다.
즉, atman 사상은 부정하고 싶지만(죽으면 끝이다라고),
그렇다고 인생이 끝인가? 그건 아니다.
여기서 부처님의 고뇌는 깊어갔다.

atman은 분명 아니다. 그건 일단 연기법에 어그러진다.
생성변화에 어그러진다.
제행무상, 제법무아에 어그러진다.
무아사상에 위배된다. atman은 결단코 안된다.
그건 기본적인, 양보할 수 없는 최후의 보루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과보(果報)를 받을 주체는 있어야 한다.
그래, 상견(常見)은 물론 아니지.
그렇다고 해서 죽는다고 해서 다 끝나나? 그건 아니지.
그렇다면 선악의 과보를 받을 주체가 없어지쟎아?
그래서 단견(斷見)도 아니다.
설명이 좀더 필요하지만, 일단 두 번째 답으로 넘어가 보자

아, 보충.  지금도
① <불교가 윤회를 인정한다면 그건 불교가 아니다. 그건 브라마니즘이다.
불교는(불자는 스님은) 확실히 하라.  
확실히  윤회를 인정하고, atman을 인정하고, 힌두교도가 되든지,
그렇지 않고, 스스로 계속 불교라고 생각한다면 윤회를 인정해서는 안된다>
라고 강하게 주장하시는 분들이 여러분 계시다.
나는 그분들의 확실한 태도가 마음에 든다.
② 그리고 아닌게 아니라, 많은 서양학자들은, 불교가 힌두교의 아류라고도 평가한다.
그 가장 큰 이유가 윤회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2. 윤회를 인정하는 쪽

학문적으로는 많지 않다.
그것은 너무나 아트만 사상을 인정하는 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회가 없다면 과보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atman이 아니면서 윤회를 맏는
그런 쪽의 연구나 사상이 발전되었다.
그러니까, 윤회라도 어떤 윤회냐가 되는 것이다.
최소한 atman식의 윤회이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3. 윤회를 강력히 주장하는 쪽.

윤회가 원래부터 불교의 사상이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극소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이 부류는 우리나라 스님과 법사님들이신데,  
이분들의 내용은 완전히 atman적인 내용이다.
뭐, 전생을 추적해 보니 그 사람이 맞대는 둥, 과거에 악행을 한 죄의 댓가로 그렇게 되었다는 둥. . .
(성철스님  이야기에도 무수하다)
과보를 이야기하는 것은 맞는데, 그러나 그사람이 바로 그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불교에 어긎난다., 그건 atman사상이다.

불교는 그사람이 바로 그사람이 아니라고 하는데 불교의 특징이 있는 것이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와 다르다고 하는 것이 불교 교리의 핵심이다.
그런데  스님들은 오백년전의 이순신이 현재 바로 그사람이다,
이런 얘기를 하고 잇으니, 그건 불교의 교리가 아니다.

대부분의 스님들의 윤회 법문은 불교가 아니다.
불론, 스님들이 신도들에게 나쁜짓 하라고 그런 말씀 하시는 것은 아니다. 착한일 하라고 말씀 하시는 것이고, 인과응보 말씀하시는 것이다. 뜻을 좋은 줄 안다. 그렇다고 해도 윤회를 그렇게 막 써먹으면 불교 아닌 것이 된다는 말이다.
쓰기 좋다고 해서 막 쓰는 건 안된다는 말이다.

그런 윤회법문은 자아에 대한 집착을 만든다. 자아에 대한 집착. 그게 아상(我相)이다.
금강경에 나오는 아상도 원어는 바로 atman이다.
금강경을 그토록 말씀하시면서, 금강경이 부정하는 atman적 윤회를 강조하신다.
그건 불자들에게 자아에 대한 집착을 자꾸 주는 것이다.
그것은 “나”, “내가 있다”라는 생각을 강조하는 것이다.
불교는 그게 아니라 무아를 가르치는 사상이다.

그래서 “진아(眞我)” 사상, “참나” 사상도 바로 atman에 집착하는 사상이 된다.
과거에 선불교에서 그런  잘못이 있었는데 (지금도 있는데),
요즘 힌두교를 하는 마하리시의 사상이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내용이  선불교에서 하던 참나 사상과 똑 같으니까)  그것이 불교로 오인되어 회자되고 잇다.
그러나 결국, 그것은 atman사상이다. 자아에 집착하는 사상이다.
불교의 무아 사상과 반대이다.


6-b
4.
자 이제, 윤회를 부정하지도 않고, 무아를 부정하지도 않아야 하는 우리들의 어려운 과제가남아 있다.

4-1 본격적인 내용에 들어가기 전에 한가지 사상을 소개한다. 지난해(2015) 어느 학회에서 어느 학자님께서 발표하신 내용이다. 그분의 사상이다. 초기불교를 전공하신 분이다.
자, 무아도, 윤회도 둘다 불교 사상이다. 그런데 이 둘이 충돌한다. 그런데 자기 생각에는 충돌이 아니란다. 왜냐. 무아라는 것은 깨달은 사람의 상태이고, 윤회는 못 깨달은 사람의 상태이기 때문에, “깨달으면 무아, 못 깨달으면 윤회”
매우 명쾌하다. 그 자리는 일류급 불교학자들만 모인 자리였는데,
그 자리에서 박수를 받았고, 매우 명쾌하다는 평가를 들었다.
질문도 반대의견도 없었다.
그러한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 왜냐.
그 이론이 소승교리로는 맞을지 모른다. 그리고 이론으로는 맞을지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안 그렇다. 지난번 (5회-열반 얘기할 때) 소승 교리에는 허점이 많다는 뜻을 얘기했는데, (열반의 개념이 덜 떨어졌듯이).

4-2
무아(無我)는 진리이다. 그것은 깨달으나 안 깨달으나 무아(無我)이다. 깨달아야만 비로소 무아가 아니다. 모든 존재는 무아이다. 무아라는 것을 깨달으면 부처가 되지만, 내가 그것을 깨닫지 못했어도 나는 여전히 무아이다. 그러니, 윤회하는 존재도 여전히 무아이다.

보살의 존재로 본다면 더욱 그러하다. 보살은 깨달은 존재이다. 그럼에도 이 세상에 다시 오셔서 보살행을 하고 중생을 이롭게 돕는다. 세세생생 다시 오신다. 그러니까 천수천안이다.
(깨달으면 이세상에 다시오지 않는다는 그런 말씀은 이제 그만 하세요)

더욱 대승사상으로 가면
모두가 부처이다. 부처 아닌게 없다. 누구나 다 부처이다.
그러니까, 무아이면서 윤회하는 것은 당연하다 (윤회를 인정한다면).

다만 그 윤회는 atman같은 윤회가 아니다.
유아(有我)로서 윤회하는 것이 아니다. 무아로서 윤회하는 것이다.
절에는 보살님들이 굉장히 많다. 다 보살이다. 그 보살님들은 유아인가? 아니다. 무아이다.(그들이 자신이 무아라는 사실을 알든 모르든) 그 보살님들이 윤회하는가? 윤회한다. 그게 현실이다. 그게 엄연한 현실이다.

각설, 현재 대부분의 불교학자들은 무아윤회 (무아이면서 윤회를 한다)를 지지하고 있다. 나도 그게 옳다고 생각한다. 20년전에 호진스님께서 이 문제를 연구해서 박사가 되셨고, 그 이후로 이 주제로 많은 학문적 논쟁이 있었다. 정승석 교수도 이문제를 깊이 팠는데, 결론은 이쪽이다. 몇몇 교수들이 이를 부정하는데, 내가 볼때는 (그분들 대개 불교학자도 아니다. 철학자이다)  그분들이 잘 모르는 것이다.

내가 볼때는 이런 것들이 정리되지 않고, 잘못된 교리들이 너무 난무한다는 것이다. 아니면 말고 식으로. 혹은 나는 그렇게 들었다는 식으로,
이런  것이 좀더 확실히 정리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좋은게 좋은 게 아니다.
적어도 종교적 진리에서는 그러하다.
종교란 목숨 걸고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거기서 교리가 틀리다면, 잘 못 목숨 거는 것 아닌가.

사람들이 목숨 걸지 않으니까, 이런 문제점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나 아닌지. . . .
그래도 잘못된 데에 목숨 거느니보다는 대충 사는게 나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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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아의 개념과, 무엇이 윤회냐는 내용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은 듯하다.
한번 더 따로 다루어야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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