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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7 무아(無我)와 윤회(輪廻) 3
 원통  | 2016·08·30 22:20 | HIT : 800 | VOTE : 147 |
407
(아래, 6부터 먼저 보셨나요?)

무아(無我)와 윤회(輪廻) 3

1. 무아(無我)란?

무아는 워낙 불교의 중심 개념이라서 책도 무지 많고, 논문도 무지 많은데  
그걸 다 애기할 수는 없고,
우선, 무아는, “내가 없다” 가 아니라, “제법무아”이다.
내가 아니라, 제법(諸法)이 무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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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로는 an-atman, 즉 atman이 없다는 뜻.  
제법, 즉 만법에는 실체(實體)가 없다는 뜻.
보통은 실체라고 하는데, 불교 용어로는 자성(自性, sbabhāva)이 없다고 한다.
만법은 모든 것, 그러니까, “나”도 거기 들어간다.
하여튼, 제법무아에서 없는 것은 “아(我)”가 아니고, 자성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만법에 “나”가 들어가니까,
일단, “내가 없다”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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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현실에서는 내가 있지 않은가.
그리고 내가 있으니까 윤회하는 나도 있지 않은가.
내가 없으면 윤회도 부정되어야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내가 있다는 것, 또는 atman이 있다는 것, 그것을 유신견(有身見)이라고 한다.)
내가 없으면, 개달을 나, 부처가 될 나도 없는것 아닌가.
그러니까 우선 내가 있느냐 없느냐부터 규명되어야 한다.

답은 “그런 너는 없다”이다.
“그런 나?“  어떤 나?
자성으로서의 나, 실체로서의 나.
즉 고유한, 독립적인, 변치않는 그런 나는 없다는 것이다.

(반론) 그런건 나도 안다. 나도 인과법칙과, 세상 만물이 변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정도를 가지고 없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변하는 나는 있고, 잠정적인 나는 있다.
그 변하는 나가, 잠정적인 나가 세상 만물을 알고, 보살행도 하고, 이타행도 하고, 깨닫기도 하고 그러는 것 아닌가.
잠정 아(我), 임시아 가짜아

이 반론은 상당히 강하다.
그런 부정할 수 없는 변하는 나, 잠정적인 나는 있다.

일단, 불교를 강하게 믿는 극소수 사람을 제외하고는 나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게다가 불교도의 대부분은 또 진정한 나, 진아라는 것을 인정한다.)

어떤 학자들은 그래서, 무아(無我)가 아니고 비아(非我)라고 한다.
번역상의 오류라고도 한다.
오류이든,  아니든, 비아가 맞느냐, 무아가 맞느냐는 논의는 남는다.
내가없다와, 내가 아니다? 차이는 큰 차이다. 그럼에도 논의는 진전되지 않는다.
거기서 막혀버린다.

어쩌면 선종(禪宗)에서 이야기하는 "What am I"나 “이뭣꼬”도 이 비슷한 질문 아니겠는가.
(그러니 무아 얘기가 속시원하게 풀리기는 어렵다,  풀리면 깨달은 거니까)
속시원하지는 않더라도. . . .

일단 진리의 당체로서의 무아를 진제(眞諦)라고 하고, 현상으로서의 나(유아)를  속제(俗諦)라고 하자.  무아 이야기는 여기서 더 나갈 수가 없구나.
그러면 윤회 이야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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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윤회(輪回)

부처님은 윤회를 인정하신다. 그러면 무엇이 윤회하는가이다.

1. 육체가 윤회하는 것은 아니다
2. 영혼이 윤회하는 것도 아니다.
  같은 말로, atman이 윤회하는 것도 아니다.  
  나라는 고정된 실체, 즉 atman 은 없다. 나의 자성svabhava는 없다

그러면 무엇이 가는가.
가는 게 있어야지만 윤회도 하고, 과보도 받을 게 아닌가.

① 그래서 부파불교에서 생각해 낸 것이 뿌드갈라(pudgala)라고 한다.
죽고나서 윤회할 때  아트만이 가는 게 아니고, 영혼이 가는게 아니고 가는 놈은 뿌드갈라란것이다.
그러나, 이 뿌드갈라가 뭐냐, 결국은 영혼 비슷한 것 아니냐. 이름만 바꾸어 놓았을뿐.
그래서 이 주장은 부정된다. 강력히 부정된다.
그래서 역시 이 문제는 안 풀렸다.

② 상좌부 불교에서는 바왕가 (bavhanga)가 간다고 한다.
나는 이것도 반대한다. 결국 그것도 이름만 바꾸어 놓았을 뿐 “나”가 가는 것 아니냐.
더구나 상좌부 불교가 사람이 죽은후 며칠만에 뭐가 떠돌고, 몇 시간만에 (사실은 찰나적으로)  수정된 정자에 바왕가가 들어가고. . .이런 얘기들은 정말 아니다.
꼭 그렇게까지 해서 윤회를 증명해야만하나. 증명 되지도 않는 것을.

③ 문제는 업과(業果)이다. 과보를 받을 주체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식불교에서는 그것의 담지자(擔持者)가 아뢰야식이라고 한다. 제 8식이다.
나는 비교적 이쪽을 지지한다. 이 밖에 다른 이론은 없다.
자,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 그것은 다섯 개다. 색수상행식. 반야심경에도 많이 나온다.
물질(육체), 느낌, 생각, 의도, 의식의 다섯가지다. 색은 육체이고, 수상행식은 정신작용이다. 그중에서도 수상행은 정신의 작용이고, 정신 그자체라고 할 것은 식(識, consciousness)이다. (그래서 식을 흔히 마음이라고도 하고, 마음을 까고가면 가장 속 알맹이를 식이라고 한다)
그건 인정할 수 있는 것이다.

자, 내가 죽어서 내 8식, 아뢰야식이 다시 태어난다. 나를  A라고 하고, 다시 태어난 나를  Ấ-라고 하자.
A와 A-가 같은가 다른다. 물론 같지 않다. A로 인해서 A-가 생겨났다. 인과는 성립하지만 동일체는 아니다. 그러나  윤회사상은 이것을 동일체라고 착각시키는 오류가 있다. 그래서 윤회사상 자체가 그리 엄밀한 사상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무아인데, 무아라는 것은 자기에 대한 집착을 없애는 것이다. 내가 내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 10년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나이다.
결국 불교의 가르침이란, 자기에 대한 집착을 끊으라는 가르침이다.
그런데 윤회라는 것은 자꾸 자기에 대한 집착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원래 과보의 개념은 권선징악을 목적으로 생겨났다.
모든 물질은 인과에 따라 변한다. 그건 국민학생이면 다 안다. 과학자들도 다 안다. 인과를 안다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한가? 범죄를 다루는 범죄자도, 판검사도 다 안다.
(어제 검사외전 보았다)
나쁜짓 하면 패가망신하고, 죄받는 다는 것 다 안다.
물론, 불교는 그런 것도 가르치지만, 불교가 가르치는 무아는 그런 것은 아니다.
자기가 자기가 아니기 때문에 자기에 대한 집착을 끊으라는 것이다.

이게 내것이 아니고, 내 지식이 원래 내것도 아니었고, 내 판단이 내것도 아니다. 이승에서도 그러한데, 저승, 내생의 내가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관계는 있지, 인과는 있지, 그러나 그 인과에 집착하지 말라는 게 부처님 가르침이다.
기억도 전혀 없고 실체적 연관성도 전혀 없는 전생의 나를 찾아서 무엇 하겠는가.

그래서 이것을 불매(不昧)인과, 불타(不墮)인과라고 했다.
인과에 어둡지 마라, 인과에 떨어지지 마라.
인과는 있지만, 자기 자신의 인과와 전생, 후생에 집착하는 것은 자아에 집착하는 것이다.
그것은  무아가 아니다. 유아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인과, 권선징악을 가르치는 것을 인천법(人天法)이라고 해서,
무아사상보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수준이 낮은 것으로 분류했다.
보리도차제론(람림)에 의거해서도,
그것은 하사도의 단계이고, 무아사상은 비로소 중사도의 단계이다. 수준이 다르다는 것이다. 같은 차원에서 할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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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면, 윤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업과 보를 받을 주체도 필요하다.
그래서 대승 유식에서는 그것을 아뢰야식이라고 했다.
그것은 내가 아니다. 나의 의식의 가장 밑바탕에 있는 “나라고 하는 생각”이 없는 것이다.
(“나”라고 하는 생각은 제7 말라식에서 생긴다. 제8 아뢰야 식은 그 껍질을 벗긴 가장 속살이다. 아뢰야식에는 “나”라고 하는 생각이 없다)
“나”라고하는 생각이 없는 자가 윤회를 한들,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런데 그게 “권선징악”을 목적으로 <그게 나라고, 그래서 나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하는 세간의 법문들은 참으로 유치한 것이다.
아뢰야의 윤회를 “죽지 않는다”고 가르치는 것은, 그래서 생사를 뛰어넘었다고 하는 것은 어찌보면 아이들을 속이는 것이다. 그러나 신도들도 그렇게 속임을 당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설령, 죽지 않는 것이 진아(참나)라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진아(참나) 는 부처님에 의해서 atman 사상으로 정면으로 부정 받은 것이고,
설사 그 진아(참나) 가 무아라고 해도, 이미 “아”를 부정해 놓고서 “我가 죽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말로 속이는 것이다.
그것은 광어(誑語)이기도하지만, 자아에 자꾸 집착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불법에 어긋난다. 그리고 인간에게 고(苦)를 불러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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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결, 무아가 윤회를 한다.
윤회를 하든 안하든 무아이다. 무아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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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몇가지 보충.

① 매우 중요
부처님께서는 윤회를 부정하지는 않으셧다. 그러나 구체적인 한 개체가 구체적으로 다른 어떤 한 개체로 태어나는 연관성ㅇ니라는 관계를 그리 강조하지는 않으셨다.

나는 그것을 “막연한 윤회”라는 개념으로 표현하고 싶다.
이에 반대되는 말은 “구체적 윤회”
즉 부처님은 막연한 윤회만을 인정하셨다는 것이다.
구체적 윤회는 바로 무아사상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부정하지는 않더라도, 아(我)에 집착하는 것이 된다. 부처님은 그러실 분이 아니다.

막연한 윤회라, . . .
부처님깨서는 길을 가시다가 한 돌무더기 무덤에 절을 하신다.
제자들이 물으니, 이 무덤은 오래오래 전 당신의 부모님의 무덤이라고 대답하신다.
오래오래 전. . 막연한 오래. . .
. . .
그렇게 따지면 이 세상에서 내 부모 아닌 사람이 없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특히 이것을 강조한다.
이것은 아주 탁월한 사상이다.
대승불교에서도 이세상 사람 중에서 내 부모 아닌 사람은 없다고 한다.
거기서 동체대비가 나오기도 한다.
윤회라는 것은 그런 정도에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화엄 사상하고도 연결된다.

윤회라는 것도 이렇게 잘 써먹어야 한다.
개아적 이기심으로서의 윤회, 개아(個我)적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윤회, 이런 시시한 윤회가 아니다.

② 전생담 (자아타카)  에는 부처님 전생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매우 유익하고 교훈적이다.
그러나 그것을 근거로 전생을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것은 교훈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물론 역사적인 사실은 아니다.
누군가가 훌륭하신 분(들)이 쓰신 교훈적인 이야기이다.
당연히 부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냥 교훈으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지 그것이 윤회의 증거가 될 수는 없다.

(어떤 분들은 금강경이 부처님께서 직접 설하신 것이 아니라는 말에 굉장히 많이 놀라고 그런 무서운, 끔찍한, 해로운 말을 해도 되는가 라고 하는데, 이제는 그런 수준은 지나갔다.  하기야 아직도 그렇게 가르치는 스님들이 많다)

③ 비슷한 일로, 남방 상좌부에서 만든 여러 가지 주석서에, 전생의 사연들이 무지하게 많이 나온다. 법구경, 숫다니파타 등등의 주석서에  전생담이 많이 나온다. 매우 유익하고, 매우 권선징악(勸善懲惡)적이다. 그러나 그것도 역시 이야기일 뿐이다.
주로 불음(佛音, 붓다고사)가 쓴 주석서의 것들이 가장 유명한데, 붓다고사 자신은 AD 5세기, 즉, 불멸후 900년 의 사람이다. 그는 금강경, 법화경, 화엄경이 세상에 나온지 500년 후의 사람이다. 주석서(앗타살리니)는 그 분이 쓴 이야기이다. 그래서 그걸로 전생이라는 것을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 그건 그냥 교훈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이면 된다. (그러나 아직도 그것을 대부분의 상좌부 스님들은 그대로 믿는다. 웃음이 나올 뿐이다.) 믿어도 안될 것은 없다.  나도 재미 있게 읽는다. 아주 재미있다. 그러나 그것이 전생에 대한 증명은 되지 못한다.
(이 이야기는 전재성 박사가 펴낸 법구경, 숫다니파타 등에 들어있다)

<윤회  무아  전생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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