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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8 불교 돈(頓)인가 점(漸)인가
 원통  | 2016·08·30 22:21 | HIT : 790 | VOTE : 177 |
408  불교 돈(頓)인가 점(漸)인가

8-1.

돈이라는 것은  소위 선가에서 이야기하는 <“몰록” 한꺼번에, 확, 일시에, 단번에,>이고,
점은 천천히, 여러 단계를 걸쳐서 깨친다는 것이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면, “깨친다”는 용어는 선가(禪家)에서 지나치게 비현실적으로 관념적으로 쓰인다. 깨친다는 것이 뭔지도 분명치 않으면서, 서로 내용없이 이름만 너무 관념적으로 혹은 선언적으로 과장되어 있다는 말이다.
(분명치는 않더라도) 부처님께서 제시하신 (이른바) 깨달음이 있는데, 선가에서 주장하는 깨달음이란 그것과는 상당히 다른거 아니냐 라는 문제가 있다. 결국은 그런 것들이 “깨우침이 돈이냐 점이냐”라는 주제와도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즉, “무엇을 깨우쳤다고 하느냐”가 서로 다르다면 그 방법이나 경로에 있어서도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다고 놔 두고, 일단 그것이 같다고 가정해 두고 생각해 보자.

결론부터 말하면, 석가모니 부처님의 오리지날 가르침은 점(漸)이다. 천천히 여러 단계를 거쳐서, 여러번에 걸쳐서 깨우치는 것이다. 그건 ① 상식적으로 보아도 그렇다. 불교 최고의 목표가 그렇게 한꺼번에 깨우쳐질 수는 없다. 그 과정에서 몇 번 개안(開眼)의 계기는 있겠지만, 그것이 전혀 없다가 한번에 모두 얻는 식과는 거리가 멀다.

② 보조국사의 돈오(頓悟)점수(漸修) 이론에서도 <깨우치고 나서도 계속 닦아야만 진정한 깨달음의 성취에 이를 수 있다>고 한다. 마치 얼음이 녹는 것과 같다고도 했다. 물론, 거기에 오후(悟後) 보림이니, 사비돈제(事非頓除)니 여러 가지 선가의 이론이 있다. 이건 보조국사가 돈오점수 중에서 점수를 설명하는 말이지만, 나는 부처님의 오리지날 가르침은 돈오도 아니고, 점오점수라고 생각한다.

③ 수많은 불교이론에서  보시 지계 인욕 정진을 강조하였고, 그것 없이는 공(空)사상도, 반야지혜도 없고, 참선수행도 의미 없다고 강조되어 왔다. 티벳불교에서도 하사도(下士道) 수행의 완성 없이는 중사도 상사도의 경지는 불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아함경, 니까야 등 많은 경전을 보아도 깨달은 후에 할 일 다 했다고 팔짱끼고 있는 일도 없고, 깨닫는 것이 그렇게 참선만 해서 한꺼번에 확 깨닫는다는 사건도 없다. 수없이 많은 공덕과 보시와 지계 인욕, 정진이 쌓이고 쌓여서 깨달아 지는 것이다.
아니, 니까야를 자세히 읽어보면, 니까야에는 오히려 깨닫는다는 생각도 거의 없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하는 일 뿐이다. 흔히 이야기할 때 “깨닫는다”는 것은 선가(禪家)의 환상인 경우가 많다.

나는 불교는 본질적으로 점교(漸敎)라고 생각한다. 불교에는 원래 돈(頓)이라는 생각이 없었다,  부처님의 교단을 대표적으로 분별설자(分別說者)라고 했다. 부처님과 그 제자들은 한없이, 끝없이 분별하였다. 너무 지나치게 분별하여서 생긴 것이 18 부파이다. 18부파는 지나쳤지만, 불교 공부의 근본은 분별이다.

현응스님이 불교는 분별이라는 한마디를 했다고 해서 우리나라 스님들 대부분이 발끈하고, 불제자가 아니라고 난리를 치는 일은 정말로 코메디 수준이다. 현응 스님은 가만히 있었건만, 다른 스님들이 그걸 “두고 못봐서” 논쟁을 하고, 행사를 하고, 그 난리를 친다. 불교의 기본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현응스님이 누구인가. 현재 조계종의 교육을 담당하는 최고책임자, 교육원장이다. 그것도 최장수다.

선사들은 분별이 나쁘다고 했을지 몰라도, 부처님은 철저히 분별하는 존재였다. 어느 쪽이 옳은지 판단을 해야하지 않겠는가. 분별이 나쁘다고 하면 그거야말로 부처님 뜻에 어긋나는 것이다. 당장 어떤 초기경전을 보더라도, 부처님께서는 계속 차근차근히 분별하고 계시고, 제자들과 바라문들을 분별하여 깨우쳐 주신다. 불교는 본질적으로 분별교이고, 따라서 점교이다. 한꺼번에 뭘 이룬다는 생가 자체가 얼마나 안이하고, 요행적이고, 또한 선정적인가.

단, 유식불교에는 무분별지(無分別智)라는 용어가 있다. 공의 도리, 반야지혜를 증득하여 변화하는 현상, 드러난 상에 집착하지 않는 지혜를 말한다.-그것은 공(空)도리의 체득을 말하는 것이다.-그러나 그 도리를 얻기 위해서도 분별 해야한다. 유식불교가 얼마나 분별하는가.  가장 분별하는 일을 통해서 얻을 수 있 것이 무분별지이다.


8-2. 그럼 불교에는 돈이라는 사상은 없는 것인가?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럼 언제부터 생겼는가? 나는 그것이 중국불교에서 비로소 생겼다고 생각한다. 중국불교의 혜관(慧觀, 5세기 전반)이 “불교에는 돈교와 점교가 있다”는 표현을 최초로 하였다. 그이전에  어느 곳에서도 돈(頓)이라는 말은 없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때부터 더욱 뚜렷이, 불과 1세기도 안되어서, 6세기 경에는 자신들이 훌륭한 불교라는 뜻으로, 서로 자기들이 돈교(頓敎)라고 내세우기 시작한다. 갑자기 확 바뀐 것이다. 물론 그것은 선불교가 출현하게 되는 전구(前驅) 증상이다. 이런 풍조 속에서 선불교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저간의 사정이 짐작되는 것은. 물론 이것은 중국 도가의 영향 때문이다. 그런데, 도가만 따로 생긴 것은 아니다. 중국 민족의 기질 속에 도가(道家)적인 기질이 강하게 들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도 도가 방식의 불교를 원하게 되고, 그런 식의 불교가 중국에서 커 갔다. 이제 중국의 선종이 원래 불교에서는 상당히 변질된, (불교가 아닌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중국적으로 변용된) 불교라는 것은 학계에서도 어느정도 공인된 것이다
(물론  중국인들이 기질이 돈적인 것만은 아니다. 유학(儒學)을 보라. 얼마나 점(漸)적인가.)

변질되었는데, 어느정도 변질되었느냐?
내가 볼 때는 (이건 주관적인 판단이다- 측정이나 계량화할 수 없기 때문에)  석가모니 부처의 단계적 실천법, 차근차근히 한단계씩 노력하여 완성에 이르는 법이 아닌, 그것도 주로 참선(선정수행) 을 주로해서 깨닫는다는 것이, 그렇게 해서 깨닫는 경지가 부처님이 말한 경지와 같은가 다른가라는 점이 있다. 그리고 그 방법이 너무도 다르기 때문에, 이걸 불교와 같은 종교라고 볼 수 있느냐  라는 점이 있다.
그것은
① 선종에서 돈(頓)을 우월하게 치고, 점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② 육바라밀 중에서 오직 선정 바라밀만을 강조하고 그 수련만으로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는 취지도 상당한 무리가 있다,
③ 동시에  경전을 보지 말라는 취지도 문제다. 그렇다면 이건 다른 종교 아니냐.
물론 오늘의 주제는 선종이 불교가 아니라는 주장이 아니다. 일단 선종은 돈(頓)을 주장하는데, 그 돈(頓)이란 것이 원래 불교의 가르침과는 상당히 먼 사상이라는 것을 확실히 해두자는 것이다.

3. 그렇다면 선종은 불교인가?

불교는 유일신 사상 비슷한 것도 받아들였고, 천당 비슷한 극락 정토라는 것도 만들었고, 구세주 같은 미륵불도 만들었다. 불교는 윤회사상도 받아들였고, 어떤 사람들은 atman사상도 불교라고 받아들였다. 우리나라에서는 굿 하고 무당 하는 것도 불교라고 받아들였고, 산신령도 받아들였다. 그러니 선종을 불교라고 하는 것에 무어 인색할 것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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