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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단법석은 원통 김광수선생의 법석(法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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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9 -돈과 점 2
 원통  | 2016·08·30 22:22 | HIT : 1,075 | VOTE : 146 |
409  -돈과 점 2

9-1.
지난 번(8)에는,  불교는 원래 점(漸)이다. 그래서 중국의 돈교(頓敎)는 비불교적이다 그런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꼭 오리지날 불교적이라야 하나? 돈(頓)일 필요는 없을까??
돈(頓)일 필요가 있으니까 돈이 생겨났고, 중국 사람들은 당연히 돈(頓)이 점(漸)보다 좋다고 생각했겠지?

따지고 보면 중국에는 교학도 많다. 화엄종의 그 번쇄한 이론들. . .얼마나 복잡하고 답답한가. 물론, 천태종도 그렇다. 또 초기에 선종과 겨루던 열반종만 해도, 열반경은 너무 논리적이고 따지는 게 많아서 읽기가 힘들다. 또 저 서유기의 현장법사는 어떠한가. 그 골치아픈 책들을 그리도 많이 가지고 와서 그 많은 사람들과 함께 다 번역하지 않았는가.  
그러니까 중국불교가 꼭 돈(頓)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다만 선종 사람들이 자기들은 돈(頓)이니까 점보다 훨씬 훌륭하다고 주장했을 뿐이다.

그럼 이제 그건 그렇다 치고, 돈(頓)일 필요는 없는가?
결론은 돈(頓)도 필요에 따라서 생겨났고, 그만큼 쓰임새와 기능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돈점은 자기 취향에 맞게 선택해서 쓰거나,
혹은 둘다 필요에 따라서 쓰면 되는 것이다.
이것저것 섞어서 써도 되고, 바꾸어 써도 된다.
다만 돈이 점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은 선가(禪家)들의 속 좁은 주장이니까
그런 건 그냥 흘려 들으면 된다.
그들이 지나치게 그것에 집착하는, 바로 그것이 그들의 나쁜 점이다.
자기들 것 아닌 것을 모두 부정하려는 태도, 바로 그것이 선종의 가장 나쁜 점이다.

또한 선종에서 이야기하는 깨달음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깨달음과는 거리가 있다. 차이가 있다는 말이다. 선종이론에서는 별로 보시행, 보살행  안하지않나? 그 사람들은 계율도 잘 안지키고. . .그러면서 자기들이 온갖 불교는 혼자 다 차지한것처럼 잘난체 한다.
나는 선종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필요에 의해서 생겨났다고는 보지만) 선종이 불교를 대표하는 것은 좀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9-2.

처음에 나는
① 불교의 교리가 다른 가르침이나 철학에도 다 들어 있더라는 말씀을 드렸다.
(그렇다고 쓸모없다는 말은 아니다. 그런 가르침이 불교에만 있더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② 불교 아닌 가르침이 (이를테면, 아트만 사상이나. 혹은 심지어 타력신앙 등) 버젓이 불교의 교리라고 들어와서 (그런줄도 모르고)  상당히 오래  상당히 널리 믿어져 왔다는 말씀도 드렸다. (흔히 “후기불교가 힌두교의 영향을 받아서” 라고 표현하는데, 그건 결국 힌두교적인 요소들이 많이 불교로 들어왔다는 말이다)
세 번째로, ③ 그럼에도 불교 교리 전혀 모르고 (그러니까 교리가 달라도 문제가 안되고)  그런 사람들에 의해서 불교는 이제껏  살려져 왔고, 유지되어 왔다는 점이 있다. 중요한 점이다. 이 세 번째 얘기를 하려고 한다.

불교를 불교이게 한 것이 교리일까? (이거 내가 참 위험한 말을 한다)
아줌마들이, 보살님들이 불교 교리 하나도 모르고 그래도, 여지껏 그분들에 의해서 불교가 명맥을 이어오고 살려져 왔다. 우리 할머니도 그랬고, 우리 엄마도 그랬다. 그렇다면 교리가 무슨 의미인가? 교리는 아무래도 좋은 것 아닌가? 만약에 그분들이 유럽에 태어났다면 기독교를 그토록 열심히 믿었을 게 아닌가? 그래도 기독교는 무조건 틀린다고 할 수 있는가?
그래도 기복불교는 안된다구? 그건 아니다. 나는 이젠 그런 주장에는 반대한다. 오히려 기복불교가 가장 본질적인 종교적 요소일 수 있다. 바로 그 기복에 의해서 불교는 이어져 왔다. 지금도 그렇다.
어쨎든 종교는 매우 어려워야 할 필요도 있지만, 동시에 매우 쉽고 단순해야 할 필요도 있다. 그 사이의 거리는 너무도 멀지만, 그 사이의 간격은 너무도 크지만, 그래도 그렇게 얘기할 수 밖에 없다.

3. 인도 불교가 왜 망했는가?
그것은 불교가 지나치게 현학적이었다는 것이다. 소위 민중을 외면했다는 것인데, 불교가 민중들의 종교가 되기에는 지나치게 어렵고 복잡했다는 것이다. 거기에 비해서, 힌두교는 너무나 단순하다. 그저 믿으면 된다. 뭘 믿는지 몰라도 그저 믿으면 된다. 뭘 믿느냐는 그리 중요치도 않다. 그러니까 힌두교에는 그렇게도 신(神)이 많은 것이다. 믿는 대상을 따지지 않으니까. 쉬우니까 인도의 보통사람들이 좋아했다.
또, 보통 사람들도, 일자 무식도 열심히만 하면 깨달을 권리가 있다. 무식하다고 해서 깨닫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불공평하다. 무식이 자기 탓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좋은 종교란, 유식한 사람이 깨닫기도 하고, 의탁하기도 하고, 동시에 무식한 사람들이 깨닫기도 하고, 의탁하기도 하고, 이 네가지 기능을 다 수행해야만 완벽한 종교라고 할 수 있는 셈이다.

아마도 불교 내부에 돈교(頓敎)가 생긴 것은 그런 요청 때문이 아니었을까?
더 나아가 염불종이 생긴 것도 그런 이유에서가 아니었을까?
아마도 서방정토 사상이 생긴 것도 그런 이유에서가 아니었을까?
아마도 밀교(즉신성불)가 생긴 것도 그런 이유에서가 아니었을까?

결국 중국불교의 역사를 보면, 현학적인 여러 종파는 그 운명이, 역사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중국역사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았던 것은 (명청 이후로)  결국  선종과 염불종이다. 두가지 모두 수행법이 매우 단순하다. 지식인들을 위해서는 말의 성찬도 필요하지만, 보통 사람들을 위해서는 아주 쉬운 법문도 필요하다. 결국은 그런 것이 종교의 생명을 유지하고, 종교의 힘을 이끌어낸다고 볼 수 있다.

“잡아 쓰는게 법이다” 그런 말이 있다. 자기 필요에 따라서, 혹은 자기 기질에 따라서 쓰면 되는 거란 말이다. 아마도 그래서 불교에서는 여러 가지 다양한 “법 거리” 들을 마련해 놓고 있는 모양이다. 그게 다양할수록 좋겠다. 그렇게 본다면 불교 교리 내부의 상충되는 것도 너그럽게 보아 줄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즉, 혹은 돈이라는 방법만 있 때 생기는 단점(바로 지금 우리의 상황)도 많다. 아마도 그래서 이제 부처님의 원래 가르침은 점(漸)이다, 혹은 분별(分別)이다, 혹은 “선종은 불교가 아니다” 그런 이야기들이 자주 말해지는 듯 싶다.


     
  410 - 선종의 공과(功過)  원통 16·08·30 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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