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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8. 열반하면 이땅에 다시 안 오는가 : 막연한 윤회
 원통  | 2016·09·20 09:20 | HIT : 728 | VOTE : 140 |
광수생각 18. 열반하면 이땅에 다시 안 오는가  : 막연한 윤회

물론 다시 온다. 항상 있다. 상주한다.
그런데 초기불교에서는 열반하면 다시 안 온다고 했다.
그게 열반 개념의 결정적인 잘못이다.
법화경 여래수량품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모든 세간의 하늘, 인간 아수라들은 나 석가모니가 석씨의 왕궁을 나와서 가야성에 가까운 도량에 앉아서 위없이 높고 바른 완전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생각하지만. 선남자들이여, 내가 성불한지는 실로 한량없고 가이 없는 백천만억 나유타겁이 지났느니라. . . .

이와 같이 내가 부처를 이룬 지는 매우 오랜 옛날부터였으며, 수명도 한량없는 아승지겁이므로, 항상 이 세상에 머물고 있어 멸하는 일이 없느니라.

너무나 유명한 내용이다. 우리들이 너무도 당연히 알고있는 내용이다.
금강경에도 있다. 제 14 이상적멸분 끝부분이다.

수보리야 장차 올 세상에 만일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능히 이 경을 수지독송하면 즉시 여래가 부처의 지혜로 이 사람을 알고 또 보아서 무량무변한 공덕을 성취케 하리라.

물론 이것은 불신(佛身)상주(常住)의 사상이다. 그래서, 우리는 불신이 상주하는 것을 믿는가? 믿지. 그러니까 비로자나 불도 있는 것이고, 불신이 상주하는 것을 믿지 않는다면 그건 대승이 아니고, 불자가 아니지.

불신상주의 사상을 가장 강력하게 천명한 것이 또한 법화경 외에 열반경도 있다. 여래가 육신으로는 열반하셨을지라도 그러나 여래는 죽지 않으셨다는 사상이다.

2.
자, 그건 대승 사상이니까 그렇다고? 그럼 당신은 소승인가?
당신은 남방에서 계 받고, 남방 스님 공경하고, 대승 경전을 모두 부정하는가? 아니지? 그런데 어째서 부처님께서 열반하시고 나면 이 세상에 다시 오시지 않는다고 우기시나?
부처님은 다시 오시고, 상주하시지만, 그건 중생의 윤회와 다른 것이라고?
그건 말만 다를 뿐이지, 단어만 다를 뿐이지, 내용은 같은 것이지?
그러니까, 부처님은 이 세상에 다시 오신다는 것을 인정하는거지?
그러니까, 부처님은 열반하시면 이 세상에 다시오지 않으신다는 말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해야지?

아, 물론, 보살이 부처가 되어 열반에 들면 이 세상에 다시오지 않기 때문에 할 수없이 중생 구제를 위해서 깨달음을 미룬다는 말도 지극히 유치한 (잘못된) 말이라는 것도 인정 하셔야지?
좀 양보하자면, 깨달음을 미룬다기 보다는 열반을 미룬다고 해야 하는데, 하여튼 열반하면- 깨달으면- 이 세상에 다시못 온다는 얘기가 결정적으로 잘못이란 것은 인정을 해야겠지?

나는 대승과 소승이 갈라지는 결정점이 여기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니까 열반하면 이 세상에 다시 오지 않는다고 계속 주장한다면 당신은 이제부터 대승이 아니고 남방상좌부다, 더 이상 금강경, 열반경, 법화경, 화엄경, 선종 얘기할 자격 없다)
남방이냐 북방이냐, 소승이냐 대승이냐를 떠나서, 열반을 하면 이 세상에 다시오지 않는다, 혹은 수행의 목적이 윤회를 벗어나기 위한 것이다라는 사상이 상당히 문제가 많은, 유치한  원시 시절의 것이었다는 것을 알자는 뜻이다.
남방불교가 아직도 거기에 집착한다면 남방불교 자체가 유치한 수준에서 더 이상의 진화를 거부하는 것이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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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추가하여,
윤회에 자꾸 집착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은데,
아, 물론, 우리의 수행의 목적은 윤회에서 벗어남이 아니다.
이 인생, “this 인생” 잘 살자는 것이고, 도 다시 태어나더라도 역시 그 생 “that 생”에서 잘 살자는 것이지, 다음생에 다시 태어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보살행을 하기 위서는 세세생생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이
대승의 올바른 가르침 아니던가.

그러나 부처님은 당시 사람ㄷ르의 교화방편을  위해서 윤회말씀을 하셨다. 경전에도 많이 나온다. 그러나 윤회에  집착하면 개아(個我)에 집착하게 되는 우려가 있다.  
그래서, 윤회를 말씀하실 때면 거의늘, “막연한 윤회”를 말씀하셨다.
개아적 윤회가 아니다. (일부 예외가 있지만.-앵무경 같은 경우- 거의대부분은 개아적 ㅇ뉴회가 아니다.)

그렇다면 개아적 윤회 피하기위해서 어떻게 하셨을까?
(이건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막연한 윤회. . .즉, 윤회를 하더라도, 상당히 오랜 기간에 걸쳐서. . .상당히 많이 윤회를 한 연후에. . .세세생생 윤회한 연후에  뭘로 태어나서. . .이렇게 표현하셨다.
그래야, 이웃이 남이 세세생생의 윤회로 내가 아니고 다 나의전생이었고. . .하는 사해동포, 동체대비의 사상에도 맞아 들어간다.
개아적 윤회에 집착하면 사해동포, 동체대비, 세계일화의 사상은 나올 수 없다.
그러니까, 소승불교가 자기만의 해탈을 추구할 위험이 있다는 표현도 납득이 될 것이다
그러한 개아에 대한 집착은 불교에 대한 가르침으로 보면, 부끄러운 유치한 사고방식이고, 부끄러운 일이다.
또한 윤회라는 것이 그런 개아에 대한 집착을 강화시키는 데 쓰여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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